미음의 시(詩)

어느 날의 일기 - 이해인 (영상시 첨부)

choijooly 2025. 1. 19. 11:45

 

 

어느 날의 일기 - 이해인

 

한창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내 옆방 예쁜 수녀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 슬픈 요즘

 

누가 죽어갈 때마다

실은 나도

조금씩 죽어가는 거라는

그런 생각을 해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니

정말 큰일이야

스스로 한탄하는 친구에게

내가 말했지

 

작은 죽음을 연습하며

누구나 겪는 일이니

괜찮다 괜찮다 위로하며

웃음을 불러보는 시간

나는 어느새 친구에게 하소연하네

 

허리가 아파

몸의 중심이 무너지니

일상의 리듬도 깨져 힘들고

머리까지 아프고 결국

온몸이 다 아프다고 하니

 

일단 오늘은 발부터

따뜻하게 하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빙긋이 웃어보네

발이 따뜻하면

온몸이 따뜻하니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오늘의 아픔들도 지나가기를

두 손 모으는 오늘

 

서로의 아픔을 가만히 헤아리며

조금씩 더 깊어지는

노년의 우정을

나는 오늘따라

더 소중히 안고 싶네

 

--이해인 단상집 『소중한 보물들』. 김영사--

https://youtu.be/rkDFdpT1nSM?si=8zkLnkrSv6o8fS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