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늙음(수필)/글/ 문보근 (영상글 첨부)
♥아름다운 늙음(수필)/글/ 문보근♥
늙음의 모습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다
낟가리는
농부에 건축물이요
시집은 시인의 건축물이다
거울을 본다
내 건축물은 아름다운가?
자신이 없어 얼굴 붉어지면서
혹시나
나에게도 있을지 모르는
아름다운 늙음을 찾아 나선다
요즘 내가 점점 이상해진다
옹졸해지는 것인지,
아량이 깊어지는 것인지,
꽃이 얄미워진다
지가 잘나서 예뻐졌다는 듯이
뽐내고 있는 꼴이
내가 보기엔 볼강스럽다
갑자기 뿌리가 안쓰러워지는 것은
저렇게 아름답게
꽃 피우기 위해서 뿌리는 얼마나
땅속을 헤맸을까,
그런 줄도 모르고
아름다움에 우쭐대고 있는 꽃이 얄미워
꿀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 꿀밤을 꽃에 주지 못하고
내 머리에 준 것은
나는 더 우쭐댄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났다는 것은
아름다운 늙음의 품성이 아닌가,
나는 앳된 나무는 그냥 지나칠 때가 많지만
고목나무는 그냥
지나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랬던 것은
고목나무를 가만히 껴안고 있으면
내가 따뜻해진다
아랫목도 없는데 고목나무가 따뜻한 것은
고목나무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내공 때문일 게다
술을 마셔도
아니 마셔도 세월은 간다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내다 찾아온 늙음이라 할지라도
단순 나이 수에 비례된다면
참 슬픈 일이다
고목나무가
내공으로 나를 따뜻하게 했듯이
나도 나의 늙음에서 배어 나오는 인품으로
세상을 데웠으면 좋겠다
장맛은 햇볕을 많이 쬐줘야 맛이 좋다
장보다 더 많이 햇볕을 쬐 본 나는
어떤 맛을 내고 있을까?
늙음으로 일어난 아침
나는 생각하면서
오래전 써 놓은 글을 다시 곱씹어 본다
나이가 든다는 건
너털웃음이 많아진다는 것
지갑을 잃어버려도
마음 끓이지 않고
날아온 공에 맞아도
화내지 않고
물건을 차에 놓고 내려도
후회하지 않고
지나가는 차에 흙탕물 세례 받아도
탓하지 않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너털웃음으로
넘길 줄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스펀지같이 된다는 것
실수를 하여도
눈감아 주고
잘못을 하여도
못 본 척하고
손실을 끼쳐도
그냥 넘겨주고
못난 짓 하는 모습을 보아도
이쁘게 봐주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스펀지같이
다 수용하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귀머거리가 된다는 것
흉을 보는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고
모함하는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비방하는 소리에도
대꾸하지 않고
편 가르기 하는 소리를 들어도
개의치 않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시할 줄 아는
귀머리가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내리막이 되어간다는 것
욕심을 내려놔
가벼워지고
교만을 내려놔
겸손해지고
아집을 내려놔
화목을 주고
고집을 멀리 내려놔
평강을 주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려 놓을 줄 아는
내리막이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콩이 메주로 메주가 진한 장맛으로
숙성되는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참외 서리하는 것을 심하게 나무랐던 사람이
지금은 그건 또 하나의 추억이라고
인식을 바꾸는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한 번 토라지면 분을 풀 줄 모르던 사람이
지금은 그런 것쯤이야 하고
가벼이 넘기는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나는 옳고 너는 틀린 거야 했던 사람이
지금은 우린 다른 것뿐이야 하고
너그러워지는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두드려 부드러워지는 북어처럼
몸과 마음을 추스려
노년이 상큼해 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노후를 산다면
그거야말로 아름다운 늙음일 게다
https://youtu.be/VuzuhZrw204?si=kDCUh173w6h-GPU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