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 며느리의 유효기간 / 글 정나래 (영상글 첨부)
♥ [좋은수필] 며느리의 유효기간 / 글 정나래 ♥
"너 혹시 나한테 서운한 거 있냐?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이른 시간이지만 전화했다."
이른 아침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찡그리며 화면에 뜬 글자를 보니 시어머니였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귀에 바짝 댔다.
"내가 너를 딸보다 더 딸처럼 생각하는데......
내가 무슨 복이 많아서 이런 며느리를 얻었나 모르겠다며
사람들한테도 자랑하며 다니는데........."
그런데 요즘 전화도 안 하고, 내가 전화해도
받지 않아 혹시 서운한게 있는지 걱정돼서
전화했다며 울먹거리셨다.
그랬다, 평소에 나는 시어머니께
아주 잘해 드리지 못해 중간쯤 가는
며느리쯤은 된다고 생각했었다.
혼자 지내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하러
가자는 말도 남편보다 항상 내가 먼저 말하곤 했다.
길을 걸을 때는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다녔고,
어머니 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올 때는
발코니에서 내다보시는 어머니를 향해
몇 번씩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다녀가실 때는 가시다가
뒤 돌아 볼 때 쓸쓸해 하실까 봐 어머니의
뒷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 드렸다.
그건 가식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 분명히 달라지긴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 집에 자주 가지 않았고,
전화도 자주 드리지 않았다.
한동안 남편이 미워서 그랬던 적도 있었지만,
예전과는 분명 달라졌음을 나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는 친척들이 모인 곳이거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막내며느리인 나를 항상 칭찬했다.
덕분에 친척들도 나를 보면 고맙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쑥스러웠다.
시간이 지나자 칭찬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칭찬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런 마음이 생긴 건 불과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내 나이 오십을 넘기고, 어머니의 연이은 골절로
일 년에 두 번 병원에 입원한 뒤부터다.
한 번 입원하면 한 달 이상 병원에 계셨다.
손위 시누이가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 간병을 돌아가며 하자고 했다.
나는 힘들어서 안 된다며 간병인을 쓰자고 했다.
직장도 다니지 않는 며느리가 간병인을 쓰자고 했으니
며느리인 내가 미웠을텐데 어머니도 시누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남편도 서로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며
간병인 쓰자는 내 의견을 거들었다.
이렇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나는 분명 달라졌다.
몇 년 전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언니는 칠남매의 맏며느리로 시 부모를 모신다.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지금은 홀로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대가족 맏며느리로 살면서 대소사를 다 치러낸 걸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 언니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며느리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더라.
그 기간이 딱 25년 되는 것 같아."
언니 말에 함께 있던 사촌언니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지만 그때
그 말이 얼른 이해 되지 않았다.
언니가 몸이 아팠었는데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효부였던 언니 말이 조금 의아했다.
그런데 요즈음 언니가 했던 그 말이 문득문득
떠오르면서 나도 유효기간이 지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언니가 했던 말이 뒤늦게 이해되고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의 유효기간을 왜 25년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그만큼 살다 보면 시댁 식구들과도 익숙해져,
며느리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갱년기에 접어드는 나이라서
그럴 것 같기도 하다.
갱년기는 혼란스런 시기에 시부모를
처음처럼 챙기는 일은 어려울 테니 말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노후가 불안한 시기
어머니의 노후까지 생각하며 가슴이 답답했었던 적이 있었다.
언니 말대로 며느리의 유효기간은 2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적령기에 결혼해서 25년이 지나면 며느리 나이도
오십을 훌쩍 넘는다. 갱년기에 접어드는 나이
그러다 보면 시댁에 무관심하게 될 것이고,
시어른의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며느리는
시부모님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갓 결혼한 새댁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
유효기간이 끝날 즈음 유효기간을 늘리는
예방주사가 있다면 맞아야 하는 걸까?
결혼 25년이 지나고 시댁에 소홀하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남편입장에서 많이 서운할 것이다.
유효기간을 늘리는 방법, 그 방법을
남편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며느리의 유효기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건
남편 손에 달려 있다는 걸 남편은 알고 있을까?
또 며느리를 맞이할 때 마음속에 미리 정해놓고
기대하지 않는다면 전화를 자주 하지 않았다고
예전보다 못하다고 서운해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저녁에 잠깐 시간을 내어 평소 잘 드시는
추어탕을 포장해서 어머니 집에 갔다.
맨발로 현관에 나오셔서 너를 보니 참 좋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쩌랴!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순간 확 밀려 들었다.
나는 아무 말 않고 이것저것 가져간 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일이 있다며 서둘러 돌아서는데
그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시 나는 돌아가서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 어머니한테 서운한 거 없어요!
요즘 아범이 미워서 그래요." 라며 얼른 둘러댔다.
대답 대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등지고 나올 수가 없어 어머니를 꼭 안아 드렸다.
서운한 거 그런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시라고 하면서....
어머니와 나는 한동안 현관에서 그렇게 말없이 안고 있었다.
어머니의 체온이 닫혀있던 내 마음을 녹였다.
"고맙다! 사랑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와
나를 졸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남편들이여 며느리의 유효기간을 늘리는 방법은
그대들 손에 달려 있다는 걸 기억하자
https://youtu.be/vBGelnEVD3E?si=iRXwnRCMbXalRY_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