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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마음의 비타민 글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류시화 (영상글 첨부)

by choijooly 2024. 6. 21.


♥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류시화 ♥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할 말이 없거나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말하는 것이 의미를 잃었을 수도 있고

속엣말이

사랑, 가장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에서

머뭇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 안에서 홀로 견디는 법과

자신 안에서 사는 법 터득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겨울이 그 가슴을 영원한 거처로 삼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단지 봄이 또다시

색을 읽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노래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새들이 그 마음속 음표를 다 물고 갔다고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외로움에 물기에 젖어

악보가 바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동행 없이 혼자 걷는다고 해서

외톨이의 길을 좋아한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길이 축복받았다고 느낄 때까지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었으나

가슴 안에 아직 피지 않은 꽃들만이

그의 그림자와 동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음 봄을 기다리며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낭송_류시화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