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가천(Gachen-佳川)
자유게시판.감동글

어느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슬픈 이야기)[영상글 첨부)

by choijooly 2024. 9. 12.


♥ 어느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슬픈 이야기) ♥

 

이글은 Kelvin Kim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너무나도 슬프고 감동적인 글이어서,

함께 공유하고 싶어 낭송 영상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효도합시다.

그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난 지금도 시장길을 지날 때면 시장 구석진 자리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곤 한다.

예전에는 이 시장길을 지나는 것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이곳을 지날 여유도 없다.

 

어쩌다 가끔씩 들려보는 이곳 시장터.

난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한 분의

고귀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엄마 시장 갔다 올테니,

밥 꼭 챙겨 먹고 학교 가거라"

난 장사를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잠을 자는 척했다.

이 지겨운 가난. 항상 난 이 가난을 증오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나고 말리라는

다짐을 굳히곤 했다.

 

내가 학교 가는 길 시장 저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어머니가 나를 발견할까 봐 얼른 도망친다.​

 

우리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셨다고 한다.

일하는 도중 철근에 깔리신 어머니를 구하시려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일을 가시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나물을 캐서 팔곤 하셨다.

난 항상 들판에 절뚝거리시며 나가시는 어머니가 싫었고 밤새

다듬으시는 모습도 싫었다.

 

더더군다나 시장 한 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 비슷하게 장사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퉁퉁 부은 다리 한쪽을 주무르시며

나물을 다듬고 계신다.

 

나를 보자 어머니는 기쁜 낮으로 3,000원을 주신다.

난 그 돈을 보자 화가 치민다.

"난 거지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 돈 필요 없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버린다.

 

다음 날 아침 난 어머니가 시장 간 틈을 타

집에 가서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간다.​

학교길 약수터에서 간단히 세수를 한다음

물로 배를 채운다.

 

난 비록 풍요롭게 먹고 입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악착같이 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기보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래서 부잣집 자식놈들보다 공부는 항상 잘했다.

 

하지만 그 자식들에게 사는 미움도 만만치 않았다.

그날 4교시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린다.

복도를 보니 어머니가 절뚝거리시며 교실로 들어선다.

선생님 드리려고 장사하려고 다듬은

나물을 한 봉다리 들고서...

.

어머니는 내가 어제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셔서 학교에 오신 거란다.

선생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이 한마디씩 한다.

 

"야! 이민석 너네 엄마 병신이었냐?"

그놈은 그 잘난 부잣집 아들 현우였다.

현우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따라 한다.

무엇이 우수운지 반 아이들은 웃어댄다.

 

난 화가 나서 그놈을 정신없이 두들겨 줬다.

그리고서는 교실을 나와 버렸다.

​저녁 무렵 집에 가니 집 앞에 잘 차려입은 여자와

현우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애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 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 내는 거야 뭐야.

자식 교육 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집 귀한 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어머니는 시종일관 죄송하다는 말뿐이다.

난 그러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집에 들어가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시다.

 

난 어머니에게 한마디 한다.

"다시는 학교에 오지마 알았어?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그래 미안하다 난 민석이가 걱정이 되어서......"

"난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

 

난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슬픔을 보이시는 어머니를 못 본 척하며 자는 척했다.

"난 꼭 성공 할꺼야." 밤새 이렇게 외쳤다.

 

다음 날 아침 수업료라며 엄마가 돈을 쥐어 주신다.

얼마나 가지고 계셨는지 너무도 꼬깃 하고

지져분한 돈이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부르신다.

 

적어도 선생님만은 내 편이셨다.

어머니께 잘해드리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신다.

선생님께서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어머니께 전해 달란다.

난 그냥 그려러니 했다.

 

하교길에 길모퉁이 배추가게 쓰레기통에서 배추잎들을

주어 모으시는 어머니를 본다.

난 모른 척 얼른 집에 들어와 버렸다.​

그날 저녁 배추국이 밥상에 올라온다.

 

"이 배추!"

난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께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배추가게 아저씨가 팔다 남은 거라고

버리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민석이 국 끓여 주라고 하더구나“

어머니의 말에 난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난 거지 자식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이 어머니 생신이셨다고 한다.

 

~~~~~~그로부터 17년후~~~~~~

 

난 의사가 되었다.

가정도 꾸리고 병원도 장모님께서 개업해 주셨다.

난 너무도 풍요로운 생활에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

돈은 꼬박꼬박 어머니께 보내 드렸지만

찾아가 본적은 없었다.

 

아니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해석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런 어느 날.....

퇴근길에 우리집 앞에 어느 한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 걸 봤다.

다가서니 그 노인은 내가 가장 잊고자 하는

어머니였다.

 

전보다 더 야윈 얼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다리......

어머니는 나를 보자 기뻐하신다.

 

"민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난 어이 없다는 듯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난 차갑게 한마디 한다.​

뭐가 모자라서 나에게 온단 말인가....

그동안 생활비로도 모자라단 말인가?

민...석....아....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전 민석이가 아니라 최영호입니다."

난 이 한 마다를 끝으로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정부가 애써 돌려보낸 후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후 한 달 동안 난 악몽에 시달린다.

할 수 없이 난 다시는 되돌아 가기 싫은

시장이 있는 우리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시장 한 귀퉁이에 여전히 나물을 팔며

기침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가만히 곁에 가서 지켜본다.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묻는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

"아니여. 우리 아들이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디 내가 싫다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 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만.

우리 아들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어머니는 자식 자랑에 기분이 좋았는지

나물을 많이도 넣어 드린다.

그런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난 예전의 집으로 향한다.

아직도 변한게 없는 우리집

거의 쓰러져 가는데도 용케 버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살았다는 게 생각에 없을 정도였다.

난 방 틈으로 돈 봉투를 넣어놓고는 돌아선다.​

 

1년이 지난 후....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고교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발길은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시장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로 보이질 않았다.

도착한 곳에는 선생님이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나를 알아보신 선생님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무거운 침묵.......

"민석아 내 옆에 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셨다.

선생님께선 낯익은 보따리를 나에게 주신다

.

바로 어머니가 가지고 다니시던 나물 보따리셨다.

이 보따리에다 밤새 다듬은 나물들을 싸서

시장에 팔러 가시곤 하셨다.​

 

"풀러 보거라"

선생님의 말씀대로 난 보따리를 풀렀다.

"돈 아닙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동안 네가 돌아올까 봐서 그리고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 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렸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하셨다.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 동무가 되어드렸단다.

그래서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선생님의 얘기들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의 얘기는 이러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은 퇴근길에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자식이 없던 터라 나를 데리고 가서 키웠다고 한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얼마나 기뻣는지 모른다고 한다.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항상 나를

공사판에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 어느날 무너지는 철근 밑에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뛰어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와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다고 한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로 살아난

운 좋은 놈이라고 한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

다리마저 불편하신 어머니께 주위 사람들은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어머닌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셨기에

나를 버리시지 않고 키우셨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닌 아버지를 잊기 위해 이곳으로 옮기셔서

나물을 팔며 나를 키워 오신 거란다

.

내가 대학 다닐 때 '암'인걸 아신 어머니는

자신의 몸보다 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에도

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내가 내 어머니를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다니.....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보고자 물어물어

서울까지 오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난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

자신이 낳은 자식도 아닌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던,

어머니를 버린 나...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조용히 내려보시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이런 자식 마져도 어머니는 사랑하시나 보다.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그후 난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씩 이곳을 들른다.

혹시나 어머니가 나물을 파시고 계실 것 같은 착각에 말이다...

 

이 영상을 제작하는 내내 고생만 하시다 15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못다 한 효성과 불효의 참회 눈물을 흘려 봅니다.

잠시나마 부모님을 생각하시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출처: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원문보기글쓴이:허리케인바위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슬픈감동이야기)/좋은글 낭독/김동현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