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은 당신의 여백입니다 / 문보근(영상글 첨부)

 

 

♥ 여생은 당신의 여백입니다 / 문보근 ♥

 

"이 글은 친구의 주검에 다녀와 느낀 것은

적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시간이란 강물 같아서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더이다

 

또 시간은 바람 같아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이다

 

사랑하는 이여

지금 아프십니까

삶에 겹질려 몸과 마음이 저리십니까

그대여 깜짝 놀라십시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그대는 희망을 만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샘솟는 우물 하나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삶이란 혼자 있으면 혼자만큼 외롭고

둘이 있으면 둘만큼 고독하고

셋이 있으면 셋만큼 괴로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인생이 덜컹거린다고 생각이 들 때

역경의 가르마를 반듯하게 타 보세요

그 속에 희망의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그 그루터기를 살펴보십시오

역경 속에 등대가 들어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이정표가 거기에 있습니다

 

고난으로 인한 아픔을

아픔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고난도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일부러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아픔을 느낀다는 거

살아있음에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야 할 당신의 기쁜 일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오늘 한 주검에 다녀왔습니다

주검에겐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더이다

감정이라곤 조금도 없더이다

 

보고 싶어 애타게 찾던 친구가 왔음에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저리도 애통해하는데도 주검은 미동도 없고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하더이다

 

사랑하는 이여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아 허비하기 쉽습니다

시간을 적금하십시오

 

당신이 무심코 흘러 보내는 시간은

사람이 숨질 때 더더 했던

간절하고 절실한 시간입니다

 

영정 사진은

모두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찍습니다

 

찡그리며 사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영정 사진 찍을 때는 연기자가 연기하듯

가장 근사한 표정으로 찍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시간을 아껴주십시오

연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 반드시 옵니다

 

생이란 유한한 것

마치 뒤주에 들어있는 쌀과 같습니다

퍼내고 퍼내다 보면

언젠가는 고갈되고 마는 인생

 

흐르는 시간을 단속하십시오

세월은 유수 같다는 말 맞습니다

쏜살같다는 표현도 맞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 차이는 있습니다

어떤 이는 밤이 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짧다고 말합니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인데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시간은 목숨입니다

목숨을 잃으면 시간도 없고 시간을 잃으면

목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논 가운데

작은 연못 하나 만들어 놓습니다

흘러갈 물을 가두어 아끼기 위함이지요

사랑하는 이여

오늘 보고온 영정 속 주인공은

숨질 때 얼마나 더 살고 싶어 했을까요

 

일초라도 더 살고 싶어 꺼져가는

자신의 불씨를 붙잡고 지켜 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우리 모두는 바람이 불어주지 않으면

멈추고 마는 바람개비 같은 인생입니다

 

바람은 어디서 오는지

어떤 모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들입니다

,

꽃은 얼마 후에 질 것을 알고 필까요

민물도 얼마 후에 짠물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자꾸만 아래로 흐르는 것일까요?

 

시작이 있으면

끝은 반드시 있는 것

 

사랑하는 이여

이쯤에 나와 모두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우리의 시간은 영원한가 하고

불멸의 시간을 가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대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무엇에 애쓰며 무엇을 만지고 계십니까

사람이 숨지며

조금만 조금만 했던 그 애달픈 시간을

그대는 어떻게 쓰고 계십니까

 

혹시 허드렛물같이 여기지는 않는가요

미련 없이 내다 버리는 쓰레기같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시간은 씨앗에게 흙과 같습니다

뿌리에게 물과 같습니다

 

청산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풀 한 포기 한 포기가 모여 비롯된 것입니다

작은 것이 쌓여 된 것입니다

 

당신의 시간을 아름답게 꾸미십시오

꽃모종 하듯 시간을 삶에 모종하십시오

간절함을 담아 시간을 모종하십시오

 

당신의 시간은 돈으로 또는 명예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여생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여생은 당신의 여백입니다

[좋은수필]여생은 당신의 여백입니다 / 문보근 (낭독 정환기)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