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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세덕편(世德篇)- 1.선대(先代)- 1) 전주 최씨(全州崔氏) 연혁(沿革)

by choijooly 2024. 4. 28.

周德齋[ [始祖 文成公 齋閣]   )

   

1. 세덕편  세덕편(世德篇)

1. 선대 (先代)

     1)  전주 최씨(全州崔氏) 연혁(沿革)

          전주 최씨는 관향(貫鄕)을 전주로 동일하게 쓰면서 시조를 각기 달리하여

족보를 편수하고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이는 각종 문헌에 나타난 바라는 연원

(淵源)이 명확하지 못하여 가장 확실하게 고증된 분을 취하여 시조로 모시고 세계

(世系)를 잇게 하였다고 한다.그러므로 전주최씨는 관향(貫鄕)이 같으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네 집안이 있다.

문성공계 : 시조 아(阿) 시호 문성(文成),

문열공계 : 시조 순작(純爵) 시호 문열(文烈),

사도공계 : 시조 균(均) 시호 문간(文簡),

문충공계 : 시조 군옥(群玉) 시호 문충(文忠),

  그런데, 우리 문성공계와 문열공계와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가 명확하지 못하여 시조를 각기 달리 하기로 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경보(京譜. 숙종병인 :1686) 서문에「문성공은 문정공(文貞公) 장백씨(長伯氏)가 된다고 하여

문열공 순작(純爵)을  시조로 모셔 합보(合譜)할 것을 결의하고 지난 무술년간(戊戌年間 1658)에

경외(京外) 여러 종원들이 의견을 모아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각 파의 가승(家乘)과 모든 기록을 모아

그 편찬의 작업을 문정공의 후손인 최관(崔寬)공이 맡았은나 외직(外職)으로 나갔기 때문에 문성공의

후손인 최세영(崔世榮 : 중량장공파)공이 맡아 내용을 검토하여 보니 여러가지 의문이 생겼다. 본(本)이

10여개가 되고 그 모두가 문성공과 문정공을 첫째와 둘째로 하고 있었으며 문열공인 최순작(崔(純爵)을

문성공의 상조(上祖)라고 되어 있었다. 또 최입평(崔立枰)을 문성공의 윗대에 더하기도 하여서

서로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여 두 파는 문성공과 문열공을 각각 시조로 하여 수보하였다」라고 하였다.

둘째, 중량장공파인 소윤공(少尹公崔得之) 묘표문(天順丁丑에 立石, 쓴자不明)에

「소윤공(少尹公)은 문성공의 현손이며 문성공 이상은 상고할 수가 없다는 것을 고증해 보니

문정공과는파가 달라 가계가 서로 이어지지 않음을 알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

셋째, 목은 이색(牧隱 李穡) 이 지은 소윤공(少尹公) 묘 비문에「공의 성씨 최요, 휘

(諱)는 득지(得之)이니 전주의 망족(望族)이라 선조대(先祖代)에 사호(司戶)이며

아(阿)에 이르러 등제(登第)하고 처음 가문을 일으켰다」고 한 반면 목은 이색이

지은 문정공 묘 비문에는「그 당시 문정공 위로 여러 세대가 대대로 관직에 있었다」는

기록을 대조하여 보면 가계가 서로 다름이 명확해 진다.

文成公 齋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