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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총람(世德叢覽)

주요인물(主要人物)-13)인물(人物)-祥翼20世-祥彦-應俊-就寬-光季-善植20世 [19]

by choijooly 2024. 5. 22.

8. 주요인물(主要人物)

13)인 물(人物)-[19]

 

ㅇ상익(祥翼 20世)

일 휘는(一諱)는 상상(祥翔)이며 자는 맹유(孟儒)이고 호는 자암(紫庵)이다.

공은 찰방공 최진호(崔振虎)의 7세 손이며 죽파공 최광남(崔光南)의 이들이다.

공은 총명함과 슬기가 남달라 6~7살에 벌써 글을 지을 줄 알았다. 성격 또한

증후하여 행동에 일정한 법도가 있었고, 말에도 절도가 있었으니 동년배들이

다 공경하고 복종하였다. 장성하여서는 조석으로 부모에게 문안 드리는 일

외에는 문을 닫아 걸고 부지런히 글 공부를 쉬지 않았고,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단정히 하여 비록 같은 마을에서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망령되이

사귀지 않았다. 만년에는 작산(芍山) 아래에 집을 지어 연못을 파고 둑을 만들어

국화를 심어 놓고 “국담(菊潭)” 이라 이름 하였는데, 날마다 그 곳에서 시를

읊조리고 산책하며 유유 자작하였고 세상의 영리에 대해서는 담담하여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다. 시를 지어 말 하기를 “ 텅 비고 적막함은 부처를 배우려

함이 아니요, 맑고 한가함은 어찌 신선을 배우려 함이 겠는가. 다만 내 심성을

수양하며 고요함 속에 남은 생을 보내려 한다네.“ 라 하였으니 대체로 공에게는

남들이 알수 없는 정취가 있어 학문을 연마하려는 선비들이 날마다 집에 가득

하였다.공은 향교에 양사재(養士齋)를 열고 도산서원의 역내에 흥학재(興學齋)를

세워 사물(四物)과 숙야(夙夜), 경재(敬齋) 등의 여러 잠(箴)을 사방 벽에

걸어놓고 날마다 학생들에게 자신을 돌아 보게 하였다.

  

매월 27일에는 여러 서생을 거느리고 이곳에 모여 토론하였는데, 모임이 있는

날에는 먼저 향음례(鄕飮禮)를 행하니 조금씩 한 고을에 떨치게 되었고 여러

차례 고을의 제사를 주관하였다. 본군의 수령인 강필로(姜必魯)가 감영(監營)에

보고 한 것은 대략⌌ 공은 집안에 있을 때에는 효성과 공경의 도를 다 하였고

고을에서는 공경과 근면한 행실을 다 하였다.⌍라 되어 있다.

영남의 수령 김노응(金魯應)이 항상 공을 칭찬할 때마다 “최공은 참으로 선비의

기상을 가지고 있다.“라 하였다. 이 처럼 공은 문학과 행의로 저명하였으며

효제경근(孝悌敬謹)을 천목으로 한 형시에 누차 입격(入格)하였고

초기 철성지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유집 두 권이 있다. (고성지) 

 

ㅇ상언(祥彦 20世)

자는 내일(乃一)이다. 어려서 부터 영민하여 7살 때 처음 집에서 수학하였는데

문리가 일찍 틔어 기거동작이 신중하였다. 경전과 역사서에 통달하여 과거

시험장에서 명성이 자자 하였다. 거처하는 곳을 가은(稼隱)이라 편액하고 자질들을

훈계할 때에는 반드시 효도와 공경을 근본으로 삼게 하였고 주경야독을

업으로 하여 가산을 잃지 않게 하였다.통정비서승(通政秘書丞)에 올랐다.(세헌록)

 

(주)최상언(崔祥彦): 해정공 최수강의 후이고 최광길(崔光吉)공의 자.

 

ㅇ응준(應俊 20世)

의숙공 초강의 후이며 최하악공(崔河岳公)의 자이다. 수 88로 임인(1902)에

통정대부(정3품)에 오르고 계묘(1903)에 장릉참봉(章陵參奉) 판임관(判任官)

8등이 내렸다.(족보)

 

ㅇ취관(就寬 20世)

자는 달첨(達瞻)이고 충순위공 최윤재의 후이며 감정공 최세재(18世)의

손인데 증 공조참판이다.(족보)보)

 

ㅇ광계(光季 20世)

자는 자신(子信)이며 호는 청강(淸江)이다. 어려서 부터 총명하였으며 학문과 후덕을

쌓아 향당의 존경을 받았다.파조 진사공 최세강(崔世康)께서 진양군 금곡면 죽곡

시거 이후 사대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함을 탄식하여 반열의 회복을 위해 전력하였으나

성사치 못하고 자손들에게 강한 유지를 내려 아들 종형제(상철. 상언.상지)들이 노력

하여 연호잡역(煙戶雜役)을 면제 받아높은 유지를 받들었다. 이처럼 공의 선비로서의

고고한 모습과 문중을 위한 높은 애족심을 기리기 위하여 1996년에 자손들의

성역으로 송덕비(頌德碑)를 세웠으며 공은 수로 통정대부에 올랐다.(최명림)

()광계(崔光季):진사공 최세강(崔世康)7세 손

ㅇ선식(善植 20世)

자는 사언(士彦)이고 호는 모재(慕齋)이다. 병절교위(秉節校尉) 용양위 장군을

지내고 증 가선대부 대호군이다.(해평파보)

(주)최선식(崔善植): 인재공 최현(崔晛)의

후이고 부사과공 최이박(崔爾博)의 7세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