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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9. 효. 열부(孝. 烈婦)-2)효부(孝婦)[2]-安氏-李氏-李氏

by choijooly 2024. 5. 31.

9. 효. 열부(孝. 烈婦)

2)효부(孝婦)[2]

 

ㅇ 안씨(安氏)

안씨는 관(貫)이 순흥이고 배진(培鎭)의 여이며18실에 진주시 금곡면 죽곡 최낟중공

(崔洛重公)의 처가 되었다. 안씨는 부군을 따라 일시 도일(渡日)하였다가 고국의

시부모 걱정에 단긴으로 귀국하여 시부모릃 봉양하였다.

안씨가 젊었을 때 시모와 동시에 출산하였는데 시모의 우즙(乳汁)ㅇ니 넉넉지 않아

어린 시동생을 자신의 젖으로 기르기까지 하였다.. 수년후 시모읜 파평 윤씨의

상을 당하여 남달리 애절한 심정으로 예를 다하여종상(終喪)하니 종당 향리에서

그 효성에 감탄하였다. 시모 별세후 홀로 계시는 시부봉양을 위해 일심으로

효순하였으나 만년에 중풍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니 이를ㄹ 흔연한 마음으로

감당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실명의 악재까지 겸하였으나 병간호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시부 최몽호공(崔夢鎬公)은 1963년 84살을 일기로 세상을 뜨니

자부의 지극한 병간호 14년만이었다. 이에 만산공(晩山公 : 洛道)이 안씨의 효절

사실을 초하여 유림과 관청에 표창 추천한 바 성균관에서 대상과 효부표창이

내려졌고 1973년 67살에 별세하니 향리에서 효부 비를 세웠다.(진사공파개요)

(주) 최낙중(崔洛重25세):진사공 최세강(崔世康)의 후이고 최몽호공(崔夢鎬公)의 자

 

ㅇ 이씨(李氏)

함안인이며 최필순공(崔必珣公)의 처이다. 이씨는 지성으로 시부모를 모셨다.

시부모가 병이 나자 의원의 악제를 쓰지 못하고 꼭 손수 약을 만들어 드렸다.

하루는 산에 가서 지초(芝草) 한 줌을 얻어 달여서 올렸드니 병이 낳게되니

모두가 신의 감응이라고 말하는데 평소 남편에게 액이 미칠까 두려워하고

몸가짐을 조심하여 입을 벌리고 웃는 일이 없었으니그 정성의

효험이러고 했다(고성지)

(주)최필순(崔必珣21世):혜정공 최수강(崔秀岡)의 후이고 최주천공(崔柱天公)의6세 손

 

ㅇ 이씨(李氏)

함안인 이갑규(李甲奎)의 딸이고 최영렬공(崔濚烈公)의 처이다.

가난한 살림에 시부모를 봉양하기 어려운 처지였으므로 근처에 있는 친정의 도움을

받는 일이 많았으며, 광주리에 음식을 담아 와서 시부모께 드리는 때도 있었다.

하루는 친정에 가니 마침 도미 생선국을 끊렸는데

이씨는 한 술도 뜨지 않으므로 그의 아버지가 까닭을 물으니

" 나의 시부모는 연로하셔도 아직 맛난 음식을 대접하지 못했는데

내 어찌 이것이 목에 넘어 가겠습니까" 라고 대답하므로

친정 아버지는 도미 2 마리를 더 사서 가지고 가게 하였다.

친정의 제삿날에 다시 와서 찬더리를 장만한 후에 향사를 끝네고 음식과

어과(魚果)를 광주리에 담아 이고 시가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밤중이라 발을 헛디뎌

개울에 신을 빠뜨려서 찾고 있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와서

광주리를 지키고 있다가 이씨가 오는 길을 뒤따르며 호위하여

집 문 앞에 이르니 사람들이 보고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인데 이씨의 효성에 산신이 감응하여 호랑이를 시켜지키게 한

것이라고 향리에서 상을 내렸다.(고성지)

(주)최영렬(崔濚烈 22世):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최광묵공(崔光默公)의증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