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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9. 효. 열부(孝.烈婦)-4) 여행(女行) [1]- 千氏 姑婦雙烈)-崔氏

by choijooly 2024. 6. 4.

9. 효.열부(孝.烈婦)

4)女行(여행)[1]

 

ㅇ千氏 姑婦雙烈

영양인 충장공 천만리(千萬里)의 후손이고 명조(命祚)의 딸이며.

전주 최병욱공(崔秉旭公)의 처이다.본래 지성으로 시부모를 섬겼고

온화함과 순종으로 남편을 모셔 친척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불행하게 큰 흉년을 당해 생계의 방도가 없자 남편의 뜻을 따라 전라남도

장수(長水) 등지로 이사하자 남편이 돌림병에 걸렸다. 의원과 약을

찾으며 온갖 짓을 다했으나 효험이 없자 자신의 살을 베어 구워서 먹였드니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이틀 뒤에 뒷일을 부탁한다는 밀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남편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남편의 당부와 사고무친한 어린 자식들

때문에 닞선 객지에서 그럴 수 없다고 마음을 가다듬고 슬픔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었다. 3년 뒤 아이가 13살 나던 해 자식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생마(生麻)속에 시신을 넣어 머리에 이고 노숙하면서 당시

동학난이 진정되지 않아서 순찰이 심하므로 닞에는 산으로 가고 밤에는

들을 돌아와서 시신을 고향에 안치시켰다.

가난속에서도 자식들을 가르치고 집안을 번창하게 일으켰다.

며느리 장씨(張氏)도 역시 시모를 섬기고 기르침에 좇아 거동하였다.

포상이 있다.(환여승람)

(주)최졍욱(崔秉旭 21世): 참봉공 최하(崔河)의 후이고

최태인공(崔泰仁公)의 손

 

ㅇ 최씨 (崔氏)

본관은 전주이며 함안 이명규(李明奎)의 처이다.

 법문(法門:예법을 숭상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시집을 와서

 "효" 자(孝字)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시부모 섬기며 남편 따르고

자식 좇아서효열로서 부도를 지켜 나갔다. 

우연히 남편이 각기병을 얻어 7년을 고생하는데 목욕재계하고

뒷산에서 만 100일을 지성으로 기도한 바 손가락에 피를 내어 먹이면

필경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고 과연 그대로 하였더니 병이 나았다

. 향리에서 그 기이한 행적에 감탄하여 그 사실을 적어서 세상에 전했다.(환여승람)

(주)최씨 :참봉공 최하의 후이고 최태응공(崔泰應公)의 여(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