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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마음의 비타민 글

엄마의 사랑은 무죄 / 문보근 (영상글 첨부)

by choijooly 2024. 12. 1.

 

 

♥ 엄마의 사랑은 무죄  / 문보근 ♥

 

아들아!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내 재혼을 이해해 줘서 고맙다

사실 너는 아직 모른다

내 재혼에 대하여 네게 말한 적이 없었기에

너는 아직 모른다

 

그런데

마치 네가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내 재혼을 이해해 준 것처럼

"고맙다"라는 이 말을 편지 서두에 쓴 것은

이 편지를 읽은 후

너는 무척 기뻐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기뻐할 뿐만 아니라

재혼하려는 내 뜻을 어느 누구보다도

너는 환영해 주고 쌍수를 들고 너는 나의

재혼을 응원해 줄 것으로 믿는 까닭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나이 팔십을 들먹이며

"그 나이에 무슨 재혼"하고 나를 흉볼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하며

너는 나를 옹호해 줄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행복하세요

제2의 인생 출발을 축하해요

돌아가신 아버지도 기뻐하실 거예요"라고

너는 내게 말하며 계면쩍어 하고 있는 나를

애써 감싸 안아 줄 것을 알고 이 엄마는 흥분된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의 선택은

언제나 탁월했다

대학 전공 선택할 때도 그러했고

직장 선택할 때도 그러했고

네 아내감을 선택할 때도 그러해왔다

그중에서 으뜸은 당연 네 아내 선택할 때다

 

너도 잘 알고 있듯이

IMF사태로 온 경제가 침몰 할 때

네 아버지 사업도 타격을 받아 접어야 했고

그 충격으로 네 아버지는 쓰러지셨고 끝내는

거액의 빛만 남긴 채

슬프게도 네 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했다

 

하루아침에 상류층에서

졸지에 빈곤층 나락에 빠진 우리 집,

그때 가난한 집에 시집 와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 며느리였다

 

요즘 젊은 며느리와 달리 알뜰한 며느리

한 푼이라도 헛되게 쓰지 않고

다니고 싶은 곳 자제하고

입고 싶은 옷 아껴 입고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림해 준 며느리 덕분에 지금은

우리가 근사하게 살고 있다

 

아들아

내 사랑 아들아

복스런 내 아들아

 

며느리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내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을 때

며느리는 나보다 더 충격받고 펑펑 울었다

그렇게 약해 빠진 며느리가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돼

육 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나에게

간 한쪽을 떼어줘 나를 살렸다

 

아들아

그런 며느리 입에서

이제는 시어머니가 아닌 친엄마를 부르듯

"엄마"하는 목소리를

내가 들으며 살면 안 되겠니?

 

나는 내 배 아파 낳은 친딸처럼

며느리 이름을 부르게 해 주면 안 되겠니?

아들아

소중한 내 아들아

껴안고 싶은 내 아들아

 

네 아버지와 네 장인은 죽마고우다

어린 시절부터 밤하늘 별을 보며

장래 꿈을 함께 키워왔고

곱이곱이마다

쓰린 고개를 함께 넘어온 친구다

서로는 물과 스펀지같은 사이였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항상 둘의 마음은

그리움으로 스며 들어 있었던 친구였다

네 아버지 영정 앞에서

얼마나 슬프게 우시더냐

그런 네 장인은 지금은 홀로 돼 외롭게 산다

 

아들아

그런 네 장인을 네가 친 아버지 부르듯

아빠하고 부르면 안 되겠니?

네 장인도 너를 친아들 대하듯

네 이름을 부르시게 하면 안 되겠니?

 

아들아

오해는 말아라

이 나이에 무슨 연모가 있겠느냐

늙어 빠진 내가 무슨 남자가 그립겠느냐

단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착한 정들을

한 곳으로 묶고 싶었을 뿐이다

외로운 사람끼리 뭉쳐 서로 언덕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어느 날 내 앞에서 며느리가 펑펑 울더라

왜 아니 그러했겠느냐

친정집에 연로하신 친정아버지를 덩그랑이 홀로 계시게 하여

여린 며느리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느냐

그런 친정아버지를 우리 집에 모셔와

함께 살게 하여 며느리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네 장인도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네 아버지와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들아

어여쁜 내 아들아

곰 인형같이 귀여운 내 아들아

 

말이 많은 이 세상이라 하더라도

사위가 아들이 되고 장인이 아빠가 되고

며느리가 딸이 되고 시어머니가 엄마가 되고

사돈이 부부가 된들 참을 수없을 만큼

큰 흉이 되겠느냐?

 

우리가 합쳐 보란 듯 행복하게 잘 산다면

그런 우리에게 반인륜을 들이대고

어느 누가 손가락 질을 하겠느냐

박수를 쳐주지 않겠니?

이것이 욕심이라면 예쁜 욕심이 아니겠니?

 

아들아

배 아파 낳은 내 아들아

지금도 나는 네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사랑한다 네 아버지는 나에겐 최고다

 

네 아버지를 만난 것이 내겐 행운이다

네 아버지는 지금도 영원한 내 남편이다

그건 상황이 어떻게 변한다 하여도

이건 언제나 불변하다

 

아들아

감같이 발그레한 아들아

가을 들판처럼 가득한 내 아들아

 

어찌 됐든

내겐 올 가을은 좀 쑥스런 계절이 되겠구나

올 가을은 단풍이 더 붉어질 것 같구나

혹여 돌아오는 겨울이

큰 추위가 몰려와 모두가 떤다 하여도

우리 가정은 참 따뜻할 것 같구나

 

아들아

내 재혼을 축하해줄 아들아

 

내 입으로 말하긴

참 쑥스럽지만

이 엄마의 사랑은 무죄다

 

사랑한다

내 아들아

https://youtu.be/VVW9zXSPtSg?si=LwnUVwzuxRKdihy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