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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마음의 비타민 글

아버지와 대문(수필)글/ 문보근 (영상글 첨부)

by choijooly 2025. 1. 1.

 

♥ 아버지와 대문(수필)글/ 문보근 ♥

삐걱거렸다
아버지가 대문을 여실 때
삐걱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마치
외출에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반기는
대문의 목소리 같다

아버지도
잘 다녀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헛기침을 하신다

갑자기 대문에서
연신 삐걱, 삐걱, 삐걱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아버지가
대문을 닦고 계시고 있다는 신호다

내 생각이 너무 나간 것일까
아버지와 대문은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다

삐걱 대문소리가
마치 사랑에 겨운
여인의 응석으로 들리고

헛기침 소리와
삐걱 소리는 화음이 아름다운
듀엣으로 들린다

아무튼
대문의 삐걱 소리와
아버지의 헛기침소리는 자라나는 나에게
때론 가르침 같고
때론 편지 같은 것이다

새벽에 삐걱 소리는 아침을 알리는 소리,
밤에 아버지의 헛기침은
워낭소리 같았고

골목을 돌아설 때나
사람을 앞질러 가려하실 때에 하신 아버지의
헛기침에서 배려를 배웠다

삐걱 대문의 소리는
때론 소꿉친구 순이가 날 찾아오는
신나는 소리였고

때론
서울로 간 형을 기다리는 나에게
삐걱 대문 열리는 소리는
반가운 소리였다

풀벌레 우는 가을밤에
사랑방에서 들리오는 헛기침소리는
단풍잎 같은
아버지의 가을 였고

휘영청 달 밝은 밤
대문의 삐걱 소리는
"나 여기 잘 있어" 말하고 싶어 안달 난
대문의 예쁜 목소리 같았다

나는 등교할 때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표정에서
활짝 열린 대문을 보았고

하교할 때
굳게 닫힌 대문에서
꽉 다문 아버지의 입술을 보았다

나는 궁금했다
대문에게 유별나신 아버지가
그런데 알게 되었다

태풍으로 담장이 무너지고
대문도 떨어져 나갔을 때 담장은 새것으로
교체하시면서
댸문은 그대로 다시는 아버지,

아버지가 어릴 적에 일이었다
간밤에 폭우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는 어린 아버지의 눈에
빗물에 떠내려온
어린 나무가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가엽게 여겨
어린 나무를 집뜰에 심고
정성을 다해 키우셨다

나무는 보답을 하려는 듯
무럭무럭 잘 자라 그늘도 생기고
새도 날아와 둥지를 틀고 여름에는 매미도 울고
가을에는 붉게 단풍도 물드는
제법 우람한 나무가 되었다

나무가 자랄 때
어린 아버지도 함께 자랐고
나무가 굵어질 때
아버지의 허리도 굵어지는
그야말로 아버지와 나무는 생명 공동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가 청년 때였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나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말라죽게 되었고

큰 슬픔에 빠진 청년 아버지는
나무를 그냥 버리기가 너무 마음 아파
궁리 끝에 매일 볼 수 있는
대문으로 만드셨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고향을 떠나
지금 서울에 있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는
세월이 많이 흐른 오래된 뒤주가 있다

환생이란 그런 것일까?
대문이 뒤주가 되는,

뚜껑을 열면
거기서 대문처럼 삐걱 소리가 나는 듯
아버지가 배인 것일까
거기서 헛기침 소리가 나는 듯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아버지와 대문은
이 뒤주 안에서 이 가을을 깨물고 있다

어느새 망팔이 된 소년 가슴에도
서서히 가을이 익고 있다

사브작
사부작......
https://youtu.be/2kudyW8a2OI?si=-BlGo_KsZmhDY3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