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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사랑 / 문보근 (영상글 첨부)

by choijooly 2025. 1. 14.

 

♥ 끝없는 사랑 / 문보근 ♥

 

큰 산이라고 아픔이 없을까

큰 산이 울지 못함은 작은 산을 품은

까닭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나에겐 큰 산 같은 형이 있다

나는 그 옆에 작은 산이다

 

자전거를 바라볼 때 우리 형제를 본다

앞바퀴는 형이고

그 뒤만 따라가는 뒷바퀴는 나다

 

망팔 되어 되돌아보니

나는 형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삶이었다

형이 가는 길은 내 길이 되었다

 

조실부모한 우리 형제였기에

나는 그랬을까

어린 내게 보이는 것은 온통 형 등짝뿐이었다

 

내가 십 대 때 일이었다

이십 대 되는 형한테 나는 물었다

 

"형

이십 대 되니 어때?

좋아?“

 

형은 대답했다

"응, 좋아,

참, 좋아“

 

좋다는 형의 말에 철없는 나는

이십 대가 된 형이 부러웠고 나도 빨리

이십 대가 되고 싶었다

 

형은 이십 대가 좋다고 말했을까?

나는 그 뜻을 철이 든 뒤에야 알았다

형에겐 이십 대가 빨리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어렸을 때 돌아 가셨다

그래서 형은 열네 살 때부터

작은 가구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일해서 번 돈을 한 달에 천오백 원

그 돈은 우리 형제에게 생명줄 같은 것이었다

 

그때 내 나이 칠곱살

어린 내가 맛있는 거 사달라고 조를 때

열네 살 형은 그 추운 겨울날에도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칠곱살 짜리 나나

열네 살 형이나 두손은 똑같은 고사리 손이다

똑같은 손끼리

누구에 손이 누구의 손을 챙긴단 말인가

 

울 땐 같이 울어야 하는 같은 어린 나인데

그런 형이 이십 대를 기다렸던 것은

국민학교 입학하는 나에게 검정 운동화나

책가방 하나쯤 사 입히고 싶었을 것이다

 

가구공장에서 받은 돈으론 그런 것들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십 대가 되어야 돈 더 주는 공장으로

옮길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기억하기론

형의 손은 항상 멍이 들어있었고

추위에 터 손등엔 피가 늘 맺혀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형은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힘든 피혁공장을 다녔다

 

피혁회사 작업 환경이란

그야말로 비명 같은 작업환경이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그 일을 선택한 형,

 

그렇게 번 돈으로 사다 준 사탕을

맛있게 먹으며 이십 대가 되니 지금이 좋다는

형의 말을 나는 부러워했다니...

어려도 너무 어린애다

나도 이십 대가 되었다

이십 대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어린애다

형은 안중에도 없고 내 고생만 보였다

 

이십 대가 되자

"아이 꾸 이런" 군 영장이 나왔다

죽어라 하고 군 복무를 다 마치고 나오니

이번엔 대학 복학이 기다렸다

 

찢어지는 가난 덕분에 대학을 계속 다니려면

죽어라 알바를 해야 했다

이때도 형의 고생은 내 관심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형을 원망도 했다,

가난도 해결 못하는 형,

무능력하고 못났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술 더 떠 혼기를 한참을 지난 형 앞에서

나는 여자친구 자랑을 늘어지게 했다

형은 아랑곳 하지않고

내 여자친구를 무척 예뻐해 주었다

 

못난 동생의 행각은 끝이 없다

나는 형에게 물었다

 

"형

사십 대가 되니 어때?

좋아?“

 

형이 대답했다

"응 좋아

진짜 좋아“

 

삼십 대가 갓 넘은 나는

이때도 형의 삶이 좋은 줄 알았다

정말 좋은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닌 걸 그날 알았다

 

여자친구 부모님과 상견례 하고 온 형은

누런 봉투를 내게 건네주었다

집문서다, 내 이름으로 된 집문서다

 

그리고 통장도 있었다

내 결혼비용이 들어있었다

그때 돼서야 나는 알았다

결혼을 포기한 형의 진짜 이유를 알았다

형은 나한테 자신의 전부를 올인을 한 것이다

 

형이라고 남들이 다 느끼는

이성에 대한 감정이 없겠는가

남들이 다 하고 사는 멋을 부릴 줄 모르겠는가

분위기를 즐길 줄 모르는가

여행도 갈 줄 모르는가

형이라고 자식 안아볼 욕망이 없는가

 

그날 난 처음 형의 손을 보았다

집문서와 결혼자금이 든 통장을 내 앞에

내밀 때 형의 손을 처음 보았다

 

저 손이 사람의 손인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록 상한 손,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마른 장작처럼 거친 손

손가락 마디마다 무엇엔가에 찢기고

두들겨 맞은 듯이 생긴 상처들,

 

내 손은 이처럼 비단같이 부드러운데,

형의 손도 이랬어야 하는데,

나는 차마 그 손을 만지지도 못한 채

큰소리 내 엉엉 울었다

 

그렇게

실컷 울었던 나지만 금방 다 잊고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녔지만

나는 형의 마음을 항상 아프게만 했다

 

어느 날 상사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다

백좋고 운이 좋아 먼저 윗자리를 꿰찬

어린 상사에게 지적을 받으니 눈물이 났다

 

마음을 삭히려고 혼술 하고 있는데

형이 보고 싶었다

전화기에서 새어 나오는 울먹한 내 목소리에

놀란 형이 단숨에 달려왔다

그날도 나는 형 앞에서

하지 말이었야 할 말을 또 하고 말았다

 

나에게 아내가 없었다면

자식이 곁에 없었다면 당장 사직서를

내고 싶었다고 푸념을 했다

 

이것저것도 없는 형이 부럽다고

나는 철없는 막말을 계속 지껄였다

 

그날 형은 내 앞에서

참 많이도 술을 마셨다, 나도 많이 마셨다

그날 처음 형과 같이 노래방이라는데 가서

어버이 은혜를 목쉬도록 불렀다

 

돛단배는 그렇다고 하지만

돗달지 않은 세월은 잘도 달려가

우리 형제에게도 망팔이란 영역 속에 들어갔다

 

형은 절룩거리며

나는 구부정하게 걸어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른 우리는

산등성에 앉아 산 아래를 본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둘이는 말이 없었다

 

한동안 그렇게 있던 형이

내 손을 잡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아우야,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산을 다닐 수 있을까?“

 

형의 말엔 비가 흠뻑 젖어 있었다

나도 바로 대답을 못했다

한참만에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요 형“

 

또다시 우리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형은 흐르는 구름을 그리듯 보고

나는 흐르는 계곡 수를 잡을 듯 보면서....

나는 눈물이 났다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나는 말했다

 

"형

그때 진짜 좋았던 거야"“

 

형도 눈이 붉어지며 말했다

 

"그럼,

좋았지, 정말 좋았지“

 

"바보,

형은 바보야, 내가 뭔데...

그냥 고아원이라도 보내지, 바보같이....“

 

형은 촉촉해지는 눈가로

지난 먼일을 사모하듯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우야

지금 내가 제일 후회하는 게 뭔지 아니?

그건 너한테 더 많이 못 해준 거 그거란다,

미안하다,“

우리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형과 나의 머릿속엔 하늘이 보였다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 그곳에 있었지만

차마 부르지 못했다

 

형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우야

지금 너 춥니? 이리로 오렴.

안아보고 싶구나"

https://youtu.be/dXN2KNTGF6g?si=EmKp2DB0IA722PW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