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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마음의 비타민 글

[감성수필]아버지 / 이 진 숙 (영상글 첨부)

by choijooly 2025. 2. 28.

 

♥ [감성수필]아버지 / 이 진 숙 ♥

 

결혼을 앞둔 아들이

갑작스런 허리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결혼식 날은 다가오는데,병원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니

마음엔 먹구름이 드리운다.안타까움에 한숨짓고 있는데,

가까이 살고 있는 막냇동생이 달려왔다.잘 보는 점집이 있다며

거기라도 한번 가보자고 한다.답답한 마음에 귀가 솔깃해졌다.

점집에 들어서자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신당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순간 머뭇거리며 뒤돌아서자 점집

주인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아버지가 돌아가셨냐고 묻는다.

 

얼떨결에 그렇다고 했다.그러자 아버지가 뒤에 따라

들어오신다고 한다.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이름까지 부르며, “너 만나길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손에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지경이다.”라며

눈물을 흘린다.아버지가 무당 몸에 실렸다고 한다.

당황스러웠지만,순간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무속인은 대뜸 큰돈을 들여

굿을 하라고 한다.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다.점집 주인은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짜증스런 말투로 속내를 드러내 보인다.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았던 점집이었는데,아들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고

돌아가신 아버지만 들먹여서 기분이 상했다.괜히 왔다는

생각에 후회스럽기까지 했다.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버지가

보고 싶어 하신다는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돌았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아버지의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마치 태풍이 지나가듯 폭풍우가 몰아쳤다.

어릴 때 찍은 오래된 가족사진을 꺼내 보았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삼십 대의 풋풋한 청년의 모습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버지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있으려니

다시 그리움이 솟구친다.

 

처음 객지에 나왔을 때 일이다.첫 명절을 맞아 집에갔을 때

동구 밖에서 아버지와 마주쳤다.아버지는 나를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풀렸는지 그 큰키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눈물을 훔치셨다.그토록 타향살이하는 딸을

애타게 그리워하셨던 것 같다.

삼십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이었다.

어머니께서 산소 옆에 혼백을 묻을 때 함께

묻어 드린다며 내게 편지를 쓰라고 하셨다.

그때 쓴 편지 내용은 기억에서 가물거리지만,

석장의 긴 편지를 쓴 것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스물셋

철없던 딸은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다.

팔 남매 중 셋째인 나를 유난히도 예뻐하셨던

우리 아버지,돌아보니 아버지의 그 크고 빛나는 사랑

앞에서 내 작은 마음은 너무나 초라해 고개조차

들 수가 없었다.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사랑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를 알 것 같다.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술과 고기,몇 가지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상을 차렸다.아버지를 위해

처음으로 음식을 장만했다.아버지를 위한 나만의

위령제를 준비한 것이다.효도 한번 못한 죄스러움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그날 이후 꿈속에서라도

꼭 한번 뵙고 싶다고 날마다 기도했다.

 

돌아가신 지 삼십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꿈에 보이지 않으셨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아버지가 나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셨는지 며칠 뒤 꿈속에 찾아오셨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묵묵히 나를 다독여

주셨다.짧은 만남이 아쉬워 다시 잠을 청해본다.

그렇게라도 아버지를 뵙고 나니 한동안 그리움에

떠밀려 휘몰아치던 폭풍우가 서서히 잔잔해져 갔다.

아픈 아들에 대해 속 시원한 해답은 못 들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희미하게 빛바랜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을 되찾게 되었다.요즘은 매일 아버지 사진을

보며 문안 인사를 드린다.이젠 늘 아버지가 곁에

계시는 것만 같아 마음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아버지!사랑합니다.그리고 존경합니다.

아버지의 딸이어서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다음 세상이 있다면 아버지의 딸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해본다.그때는 못다 한 효도 꼭 다 하리라.

오늘도 아버지의 대한 그리움이 고향집 굴뚝에 피어나는

연기처럼 피어오른다.새싹 움트는 연둣빛 봄날

다시 찾은 한 조각 그리움을 꽃잎 속에 고이 담아

봄 향기에 실어 아버지께 띄워 보낸다.

https://youtu.be/8zW6lCJkVWY?si=PpCKPPxoBg3G0z4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