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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마음의 비타민 글

아버지의 에움길 / 문보근 (영상글 첨부)

by choijooly 2025. 3. 1.

 

♥ 아버지의 에움길 / 문보근 ♥

<어느 아버지의 삶의 애환을 그린 수필>

 

아버지가 달이라면 낮달이십니다

하늘에 떠 있어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달,

그러나 지금은 밤 달이십니다

모두가 바라보는,..

"얘야 오늘 나하고 술 한잔 하자"

퇴근 준비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를 걸어 오셨습니다

"아버지,지금 술이라고 말씀하셨나요?"

 

나는 놀란 마음으로 되물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술 한잔도 못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술 얘기를 꺼내시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아버지께달 려갔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계신 곳은

허름한 선술집 한쪽 구석이었고

벌써 소주 한병을 다 비우고 두번째 소주병을

기울이고 계셨습니다

 

"아,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술이라면 지나치실 정도로

거부 반응을 보이셨던 아버지가

오늘은 웬일로 독한 소주를 마시고 계신것입니다

 

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서 있자

아버지는 손짓을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 왔구나 어서 이리와 앉아라"

"아버지 괜찮으세요?

오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아버진 술 못하시잖아요?“

 

"걱정을 했구나

난 괜찮으니 걱정 말아라"

나를 또 놀라게한 것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입에 물어본 적이 없었던 담배를 아버지는

피우고 계셨습니다

 

나는 덜컥 겁까지 났습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큰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아버지 정말 괜찮으신 거죠?

못하시는 담배까지,오늘 왜 그러세요,"

"얘야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아버지는 내 질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할아버지 기일이지요"

"맞다 네 할아버지 기일이지“

 

이 말을 들은 나는

오늘 아버지의 전과 다른 모습이 할아버지와 관계가

있었음을 직감으로 알고 나는 조금은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왜 술과 담배였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술잔을 비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내가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네 할아버지 때문이란다

네 할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과 담배에 젖어 사셨다

 

나의 유년시절은 술주정 하시는 네 할아버지와

네 할머니가 자주 싸우시는 모습을 보고 커왔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이담에 크면 술과 담배는 절대 안하겠다고 말이다“

 

이때 나는 아버지의 붉어지는 눈을보며

아버지의 어린시절이 얼마나 추운 나날이 되셨는지

알것같아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아버지는말씀을이어가셨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네 할아버지는 술병으로 돌아가셨다

 

그 어린 나이에

네 할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내드리고

그 그리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꼬마가 상복을 입고 꽃상여 뒤를

울며 따라가는 기막힌 상황,

그날은 어찌나 그리도 눈이 많이 내리던지

눈에 가슴까지 푹푹 빠져가며

꽃상여를 울며따라 산눈길을 올라야했다

 

한참을 따라가다 고개를

들어 보니 네 할아버지관이 보였다

어린 꼬마가 상주 되어 울며 정신없이 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여밑으로 들어간 거였단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내 어린 마음에도 담배 많이 피시어

고약한 냄새가 났던 기억과

술 많이드시고 네 할머니와 싸우시는

광경이 눈에 선하게 들어 온다

 

정말 싫었다

그런 우리집 환경이 정말 싫었다

그래서 담배와 술을 안했지, 아니 안 배웠다

네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결심한 결과 였단다

 

내가 내색은 않고 살았지만

내 가슴에 맺힌 것이 있는데 그게 뭔지 너는 아니?

그건 단 한번만이라도 그렇게 좋아하시는

네 할아버지께 술을 건하게 사드리는 거였단다

지금은 마음속에만 남아 있을 뿐....“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시고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나도 울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잘압니다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같은 분이시란 것을,

막혀도 스스로 물구를 내시는 분이시란 것을,

가난을 기회로 여기시고

불행을 도전 의식으로 만드는 분이시란 것을,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가난해도

너무 찢어지게 가난하셨습니다

공부를 잘해도 대학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궁여지책으로 아버지는

가정 형편상 대학에 가지 못하고

고졸 출신으로 장교로 임관하셨습니다

군생활 중에도 비육사 출신이라는

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부단히도 노력하시어

군 위탁 장학생으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셨던 아버지,

 

동기 중 2명에게만 주어졌던

대령에 진급하고 전역하셨던 아버지,

그 과정에서의 애환과 설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아버지,

 

어떤 설움에도 끄떡없으시던

대한민국 육군 대령 출신, 아버지가

연하고 연한 사람 되어

주체할 수 없이 허물어지고 계십니다

할아버지의 그리움으로....

 

나는 알았습니다

혈육이란 끊어져도 흔적 없이 다시 붙는

쇳물같이 뜨거운 것이란 것을

 

부자지간이란

오래되어도 새순을 내미는 그루터기 같은

것이란 것을

 

지금은 낭송을 취미로 제2 인생을 사시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https://youtu.be/Lo4ZbWLqUYc?si=I6kfkurRM320OYK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