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일흔을 지나며 / 글 문보근 ♥
일흔을 지나며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
순간 켜켜이 쌓인 먼지처럼
묵직한 시간이 느껴졌다.
낡은 표지 위에 희미하게 새겨진
‘나의 이야기’ 란 다섯 글자는
마치 봉인된 기억의 문 같았다.
엄마는 알고 나는 모를 이야기들이
무늬처럼 고스란히 새겨진 엄마의 일기장,
나는 금지된 영역을 탐험하는 듯한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으로
조심스레 페이지를 넘겼다.
삐뚤빼뚤 써진 엄마의 글씨,
그건 마치 엄마가 걸어온 삶의 지도 같았다
장맛철 날씨같이
희로애락이 혼재 되어 있는
엄마의 일기장
젊은 날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선
붉게 물든 엄마의 뺨이 떠올랐고,
고된 시집살이의 고백에선
왠지 모를 먹먹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밤새 열 오른 내 머리를 짚으며
걱정했을 엄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페이지에선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일기장 속에는 화려한 꿈을 꾸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해야 했던
젊은 엄마의 아쉬움도 묻어 있었다.
배우지 못한 설움과 끝없는 배움에 대한 갈망은
훗날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주었다.
엄마도 한때는 빛나는 꿈을 꾸던 소녀였음을,
그리고 그 꿈들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살아왔음을 깨닫는 순간,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어쩌면 나는
엄마의 젊은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따뜻한 밥 한 끼, 편안한 잠자리,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 뒤에는
엄마의 헤아릴 수 없는 희생과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철없는 투정과 서툰 반항으로
엄마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냈을까.
낡은 일기장 속
엄마의 한숨과 눈물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 한켠이 아릿해졌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조용히 일기장을 끌어안았다.
빛바랜 종이 위에 새겨진 엄마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닌, 굴곡진 삶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았다.
잔잔하지만 강인했던 엄마의 사랑,
묵묵히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엄마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엄마의 일기장은 잊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려주고,
앞으로 엄마의 남은 시간을 더욱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선물해 주었다.
일흔을 지나며
아직 몰랐던 한 여자는 어떻게 피었다가
어떻게 져야 하는 지를
엄마의 일기장메서 나는 찾았다
나도 한 여자,
입술을 깨문다
엄마처럼 지기를.....
https://youtu.be/fZVMSiWnio8?si=BcB1CVhOSBepFzz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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