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주요인물(主要人物)
14)효자(孝子) 효행(孝行)[3]
ㅇ 광극(光極 19世)
자는 자건(子建)이며 참군공 최수용(崔水勇)의 후이고 동지사공 최섬
(同知事公崔暹)의 손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언제나 부모의 마음이 즐겁도록
노력하였으며 일찍 흉년을 만났을 때 쌀을 지고 100리 길을 걸어 왔으며 혹시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보면 가져와서 드리고 어른의 몸이 병이 있어서 편치
못 할때에는 의원을 불러서 조제한 약을 송종양례(送終襄禮)를 예에 따라
치루었다.향당에서는 누차에 걸쳐 사실을 천거하였으나 표상 받지 못하였다.(환여승람)
ㅇ규환(奎煥 19世)
자는 종여(宗汝)이고 호는 미암(美岩)이다.영모재공 최진추(崔震樞)의 증손
이고 회포공 최붕대(崔鵬大)의 아들이다.학문의 공과(功課)를 일삼아 시경과
주역을 읽기를 좋아하고 8순이 되도록 거둬치우지 아니하여 거무(巨拇:제일로
됨)가 되었으며 학재(學齋)를 도산(道山)에서 일으키고 초 하루마다 학문을
강론하엿다. 부모를 섬김에는 지극히 효성스러웠고 상중에는 질병이 아니고는
상복의 끈을 풀지 아니하였으며 장례에 이르러서는 오래도록 비가 오다가
무지개가 집안에서 일어나서 묘 구덩이 까지 뻗치고,홀로 상로(喪路)에만
비가 오지 아니하였고.반혼(返魂)에도 무지개가 처음과 같았다가 집에
이르러서 또 큰비가 왔다.이리하여 장사에 모인 사람들이 효감(孝感)을
일컫는칭찬이 자자하였다.1871년 고종 때 효행으로 등몽교관을 추증하고
정려(旌閭)케 하였다. 유고가 있다.(진양속지. 고성지)
(주) 최규환(崔奎煥):찰방공 최진호의 6세손이고 최붕대공(崔鵬大公)의 자
ㅇ광첨(光瞻 19世)
자는 사창(士昌)이다. 천성으로 효행이 지극하고 또 인정이 두텁고자인(慈仁)하니
집안이 두루 화합하였으며 부모의 임종에는 손가락을 끊어 주혈(注血)하여
회생케 하였고 상을 당하여는 피 눈물로 3년 상을 치루었다.(향교지)
(주)최광첨(崔光瞻):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매국당 최규(崔珪)의 자
ㅇ광열(光說19世)
자는 몽약(夢若)이고 호는 종모재(終慕齋)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문학이
흡족하고 풍부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아니하고 문을 걸어 잠근채
부모를 봉양하고 별세 후에는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였다.
묘가 집 뒤에 있어서 날마다 반드시 3번씩 살폈다.(향교지)
(주)과광열(崔光說):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동와공 최중회(崔重會)의 손
ㅇ태진 오효(泰晉19世 5孝)
자는 천일(天一)이고 호는 남파(南坡)이며 유일(遺逸) 참봉공 최하(崔河)의 후이고
농산공 최응남(崔應男)의 6세 손이다.부모가 병이 나면 백방으로 의원과 약을
구해왔고 밤 낮으로 물을 떠 놓고 하늘에 기도하여 샘물이 다 말라버릴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깊은 밤이라도 기침소리가 들리면 곧 일어나 살펴보면서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부인 전(田)씨도 역시 효성이 지극하여 상을 당하자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피눈물로 3년상을 마쳤으며 일찍 이를 드러내고
웃는 적이 없었다고 한다. 포장이 있다. 공의 아들 최현홍공(崔顯洪公)과 손
최병립공(崔秉立公)이 또한 효행과 미적(美蹟)으로 명륜록에 등재 되었다.
최병립공의 처는 김해김씨로 의형(義亨)의 딸이며 김씨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시부모의 병환에 탕약과 대소변을 타인에게 맡기지 아니했으니 3세5효
(三世五孝)로 향도 인사가 유적으로 표창하고 비를 세웠다.
(환여승람. 고성지.고성문화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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