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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主要人物-14)효자(孝子)효행(孝行)[6]-必耋21世-澄- 浩-秉鶴21世-秉珉-必永21世

by choijooly 2024. 5. 29.

8.주요인물(主要人物)

14)효자(孝子) 효행(孝行)[6]

ㅇ 필질(必耋 21世)

자는 사유(士維)이고 시조 참봉공 최하(崔河)의 후이다. 부친상을 당하자 3년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매서운 추위와 찌는 더위 그리고 거센 비바람에 도 짚단 하나를

덮고 잠을 잤다. 어느 날 밤 폭설이 내려 사람들은 공이 동사하였을까 걱정하여

찾악4ㅏ 보니 ㅈ;ㅍ단을 등에 덮고 평소와 다름없이 앉아 있었다.

공이 별세하니 후인들이 비를 세워 이 일을 기록하였다.(환여승람)

(주)최필질(崔必耋) : 참봉공 최하(崔河)의 후이고 최태응공(崔泰應公)의 손

 

ㅇ 징(澄  21世)

자는 사용(士庸)이요 호는 수암(壽岩)이다. 나이 4살 때에 계모 조씨에게서

기루어졌더니 조씨는 성질이 엄하여 여러 자식들이 잘못이 있으면 조금도 가차가

없었다. 그러므로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효성심을 일으키면서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에 힘썼다. 만년에 살림을 나누어 준령을 사이에 두고 살더니

조씨가 물고기를 즐겼으므로 날마다 몸소 낚아서 가지고 10라 밖에 가서 드렸다.

조씨가 말하기르르 " 낚는 데는 수고가 안되겠지만 대광우리가 무겁지 않느냐?"

하였으니 대개 그의 쇠약한 것을 민망히 여긴 것이다.

지금의 청광(淸光)에 살았다.(진양지. 도성지)

(주)최징(崔澄) : 찰방공 최진호의 8세 손이며 화포공 최붕대(崔鵬大)의 증손이고

치암공 최상우(耻菴公崔祥羽)의 자

 

ㅇ 호(浩  21世)

자는 사흠(士欽)이요 호느느 월오(月塢)이며 수암공 최징(崔澄)의 아우다.

평생에 소요부(邵堯夫: 周나라사람)의 「 가난한 속에 안주하면서 세상의

기미를 안다 (安貧知幾」의 귀절로서 몸을 가지는 부적으로 삼았다. 모친이

갑자기 병에 걸렸더니 공이 비를 무릅쓰고 지름길로 돌아 왔으므로 그 연고를

물으니 이르기를 " 꿈이 이상했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이로 부터 밖에서 경숙(徑宿)하지 않고 몸소 치마와 담틀을 씻었다. 이를 대신

하기를 청하면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진실로 자식된 도리다."라 하고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좌우에서 부지(扶持)하여 천년(天年)을 마쳤다.

지금의 청광(淸光)에서 살았다.(진양지. 고성지)

(주)최호(崔浩): 찰방공 최진호의 8세 손이고 화포공 최붕대(崔鵬大)의 증손이고

치암공 최상우(耻菴公崔祥羽)의 자

 

ㅇ 병학(秉鶴  21世)

자는 주일(周一)이고 참봉공 최하의 후이며 겸재공 최대악(崔大岳)의 현손이다.

그의 처 김씨와 함께 부모님이 90살에 이르기 까지 하루같이 섬기고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다. 향리 사람들이 높이 칭송하고

포상 하였다.(세헌록)

 

ㅇ 병민(秉珉 21世)

자는 주진(周進)이고 호는 성암(醒岩)이다. 성품은 바탕이 지효(至孝)하고

가난하여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자 고용 품삯으로 받들고 부친이 병이 나자

인육(人肉)이 약이라 하니 자신의 살을 베어 올리자 즛효였다.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하여3년상을 마치니 이웃이 칭송하고

포상하였다. 벼슬은 감찰이다.(환여승람)

(주)최병민(崔秉珉)참봉공 최하(崔河)의 후이고 최태우공(崔泰羽公)의 손

 

ㅇ 필영(必永 21世)

자는 유안(幼安)이며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최광언(崔光彦)공의 손이다.

천성이 효성스럽고 평생을 하루같이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하였으며 이를 찬양하여 고을에서 포상하였다.(세헌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