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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主要人物-14)효자(孝子)효행(孝行)[10]-德升23世-昌淳-圭順 -圭桓-鼎淳 23世

by choijooly 2024. 5. 30.

8. 주요인물(主要人物)

14)효자(孝子) 효행(孝行)[10]

 

ㅇ 덕승(德升23世)

생부는 중진(重鎭)이며 일 휘는 일순(日淳)이고 자는 원약(元若)이요

호는 묵암(默菴)이며찰방공 최진호의 10세손이고 용산공 최필준(崔必儁)의 손이다.

어려서 부터 재간과 국량을 구유(具有)하고 체구가 거대하여 문당이 추중하였다.

과모(寡母) 이씨에게 입양되었는데 뜻을 어긴 일이 없었고

이씨가 중년이 된 뒤로부터 낙상을 하여 팔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공이 반드시 아침 저녁으로 곁에서 손가락을잡혔다. 모친이 나이 80살에

이르기까지 대소변을 꼭 남의 도움을 받아 하게 되었는데

속옷 세척까지 몸소 하면서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였다. 상을 당해서는송종(送終)에

여한이 없게 하였고, 또 생부를 집에 맞이하여 그 몸에 맞도록 봉양하였다.

지금의 청광(샛담)에 살았다.(진양지)

 

ㅇ 창순(昌淳23世)

자는 병현(炳見)이고 호는 시호(詩豪)이며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묵와공 최필헌(默窩公 崔必獻)의 손이다. 효심이 돈독하여 부모를 섬김에 70여년

동안 한번도 그 뜻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마치 어린애처럼 "엄마"라 부르며 어버이 무릅에 앉아 노채지오(老菜之娛)로

부모님을 즐겁게 하엿다. 재예가 뛰어났고 시문에도 능해 사람들이

경탄하여 칭송하였다.(세헌록)

 

ㅇ 규순(圭順23世)

자는 낙칠(洛七)이요 호는 양천(良川)이다. 공은 찰방공 최진호(崔震虎)의 10세손

이며 송포공 최이대(崔以大)의 5세 손이다.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니이 14살에 근본을 중부 집에 옮겼더니 어버이의 뜻을 순응하여 털끝만치도

어기거나그릇되게 하는 일이 없었다. 일찍 문중 일 때문에 옥에 갇혔는데 어버이가

병이 들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옥중지기에게 애걸하여 이르기를 " 나로 하여금

낮에는 옥에 있게 하고 밤에는 집에 가서 약을 받들어 모시게 한다면 너에게는

관의 책임이 없게 할 것이고 나는 정성을 펴게 될 것이다.." 라 하니 옥지기도

그의 성의에 감동하여 드디어 허락 하였다. 이로부터 집에까지 거리가 10리였는데

밤을 타서 와 의원으로 부터 약을 지어와서 드리고 닭이 울면 옥으로 돌아갔다.

ㅣ와 같이 하기를 18일 동안을 계속하다가 일이 해결되어 풀려나고, 부친도

회생하여 천수를 누렸다. 일반성면 양장(良庄)에 살았다.(진양지)

 

ㅇ 규환(圭桓23世)

자는 숙경(肅卿)이요 호는 병암(屛岩)이다. 공은 해정공 최수강(崔秀岡)의 10세

손이고 은재공 최명대(崔鳴大)의 5세손이며 증 통정대부공 최덕진(崔德鎭)의

아들이다. 공은 힘써 배우고 괴로음을 이겼으며 성품이 또 지극하여 효성스러웠다.

나서 두돌이 지나 모친을 잃고 계모 이씨응 섬기더니 정성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프고 괴로운 빛을 드러내지 아니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계모가 그의 병을 알지 못했더니 임종(臨終)에 시를 남겨 끝까지

봉양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삼았다. 평생에 처신이 단정하고 방정하여 법도를

어기지 아니하였고, 책상위에는 사자(四子: 공자.맹자. 정자.주자)만이

있었다. 유집 2권이 있다. 지금의 고성 청광에 있다.(진양지)

 

ㅇ 정순(鼎淳23世)

자는 육현(六見)이고 찰방공 최진호의 10세 손이며 수직(壽職) 최석진공

(崔錫鎭公)의 자이다. 천성이 지효(至孝)하고 부모 섬김에 한 번도 거스른

일이 없었다. 부인 배씨도 역시 효성이 있어 시부모를 잘 모시니 향당이 이를

사람의 마음 바탕이 착하다고 하였다고 칭송하였다.(환여승람)

(주)최정순(崔鼎淳):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송포공 최이대(崔以大)의

5세 손이며 농암공 최석진(崔錫鎭)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