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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미음의 시(詩)

가을의 여백에 앉아서/문병란 (영상시 첨부)

by choijooly 2024. 11. 16.

 

♥ 가을의 여백에 앉아서/문병란 ♥

 

가을은 먼저

4만 원짜리 횟감 두 접시와

우리들의 단란한 술잔 속에 와서

비린내도 향그러운 가을바다

아침이슬 한 잔씩을 가득 채웠다.

 

길고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모처럼 하늘이 높고 푸른 날

때마침 제철 만난

남해 바다 전어 떼

그 싱싱한 비린내 속에서

우리들의 눈빛 가득

익어 가는 가을이 주렁주렁 열렸다.

 

시인은 술보다

은비늘 파닥이는 가을바다에 취하여

코스모스 손짓하는 바닷가 횟집의

풍어의 식탁 앞에 허리띠를 풀고

원고료 없는 시 청탁에 쉽게 응하였다.

 

일금 5만 원짜리 원고료 대신

그 다섯 배 비싼 점심을 대접받고

가을의 여백에 앉아

우리들은 이미 모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시인이 되어 붉으레 고운 단풍이 들고 있었다.

가을은 취하는 달

그리고 외상으로도 서로 사랑하는 달.

가을의 여백에 앉아서 - 문병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