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여백에 앉아서/문병란 ♥
가을은 먼저
4만 원짜리 횟감 두 접시와
우리들의 단란한 술잔 속에 와서
비린내도 향그러운 가을바다
아침이슬 한 잔씩을 가득 채웠다.
길고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모처럼 하늘이 높고 푸른 날
때마침 제철 만난
남해 바다 전어 떼
그 싱싱한 비린내 속에서
우리들의 눈빛 가득
익어 가는 가을이 주렁주렁 열렸다.
시인은 술보다
은비늘 파닥이는 가을바다에 취하여
코스모스 손짓하는 바닷가 횟집의
풍어의 식탁 앞에 허리띠를 풀고
원고료 없는 시 청탁에 쉽게 응하였다.
일금 5만 원짜리 원고료 대신
그 다섯 배 비싼 점심을 대접받고
가을의 여백에 앉아
우리들은 이미 모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시인이 되어 붉으레 고운 단풍이 들고 있었다.
가을은 취하는 달
그리고 외상으로도 서로 사랑하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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