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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미음의 시(詩)

길 / 김기림 (영상시 첨부)

by choijooly 2024. 11. 14.

 

 

♥ 길 / 김기림 ♥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 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 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날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 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길 - 김기림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