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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미음의 시(詩)

산다는 것, 전나무 숲길 끝에는 / 김락향(영상시 첨부)

by choijooly 2025. 4. 23.

 

 

산다는 것 – 김락향

 

딸아

보름달처럼 웃으며 동고비도 박새도 불러라

너에게 가난한 밥상을 차려 줄 때

간식을 줄 때도

말랑하고 따끈한 심장을 듬뿍 넣었으니

생을 자작자작 뜸 들여야 한다

생각 없이 넘기는 달력은 손가락을

벨 수 있다

 

아들아

생이 노을처럼 붉었다가 농이 번져도

하루살이처럼 잉잉거리지 말고 의연하게

나사 하나 풀고 크게 숨 쉬어라

어쩌다 역류 되면

되새김으로 절제의 허기를 달래

가슴에 섬이 생겨도 억지로 퍼내지 마라

밤하늘 별빛도

창의력도 혼자 이고 싶어 한다

 

아득한 한 뼘의 삶에는 누구나

모래바람과 태양을 꼭꼭 씹으며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긴 다리와 그림자에 얼비치는 외로움이

장밋빛 오기가 배어 있다

 

산다는 것

공감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다

 

2019. 『에움길』.오늘

 

전나무 숲길 끝에는 – 김락향

 

대웅전, 댓돌 위

검정고무신 한 켤레 묵언 중이다

 

늙은 느티나무도

어린 배롱나무도

토담 옆 몽당 빗자루도

묵언 중이다

 

마당 한 바퀴 돌아 고요해진 마음

대웅전 뒤뜰까지 돌면 어제가 헹궈지고

내 세월이 다 맑아질 것 같은

풍경風磬 소리 바라보는데


토담 너머

계곡 물만 인기척을 하는구나

 

2019. 『에움길』. 오늘

https://youtu.be/hEJtnG0AYAQ?si=kOmtv7-uCrruhk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