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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미음의 시(詩)

삶이 자꾸 흔들리고 아플 때 / 이초야 (영상시 첨부)

by choijooly 2025. 5. 15.

 


 ♥ 삶이 자꾸 흔들리고 아플 때 / 이초야 ♥

 

1

너만 그런 게 아니야

풀은 쓰러지면서 꺽이지 않는 법을 알게 되고

나팔꽃은 하루가 비비 꼬이면서 꽃이 되고

공은 차이면서 골인되고

넥타이는 묶여야 제 모습을 하고

못은 두들겨 맞고 나서 제 몫을 하고

종은 부딪치면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다

명성을 날린 길은 수없이 밟히고 나서

비로소

이름을 얻는 것이다

2

슬픔을 탕진할 때까지

아픔이 바닥을 드러내고 끝끝내 바닥날 때까지

실컷 울고 아프리라

새는 슬픔을 탕진하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풀은 흔들림의 끝에서 꽃이 피고

이겨낸 시간만큼

흔들림의 깊이만큼

쓰러지지 않는다

3

생각 없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고 아프니까 사람이다

제 몸을 흔들어 대나무는 꺽이는 것을 막고

천 번 바람 맞고 예쁜 꽃은 피고

너와 나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중이다

4

눈물을 뿌리고 싶은데

봄비가 먼저 와

내 눈을 적신다

눈물 날 일 하나 없는 세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네가 기쁨의 눈물 흘릴 때 나도 눈물 난다

눈물에 슬픔뿐이랴

눈물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 나는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그러나 나는

눈물을 삼켜 아픔을 씻는다

흘리고 보이는 것만이 눈물은 아니다

5

꼭 가져야 할 것만 갖기 위해

몸집을 키우지 않고 나비는 날개를 키운다

멀리 가려고 민들레 홀씨는 제 무게를 줄인다

갈 길 먼 민달팽이는 집보다 더듬이를 갖는다

작고 가볍고

느린 것들에 대한 경외를 느낀다

부족한 것이 아니고

앞서 가지 않은 것이 아니며

더딘 것도 이니고

오늘은

네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며

내일은

제가 좋아하는 것만 가질 것이고

지금

너의 속도로 가고 있는 것이니

기죽지 마라

6

내일은 찢어진 뒷장에 숨어 좀처럼 보이지 않고

어제는 이미 잊었고

오늘은 앞이 캄캄한데

투명한 잔 속에 내 잔상만 보인다

그럴 때 있다

쓴 술을 차라투스트라와 마시는데

상심한 문학은 빈 술병 속에서 고뇌에 젖고

선택받지 못한 낱말들은 잔 속에서 스러지고

철학은 취해 갈팡질팡하고

안주 없는 삶을 곱씹을수록

세상은 멀쩡한데 눈물만 취하는 날

앞이 안 보일 때 있다

신호등 없는 구간을 건너고

이정표 없는 길을 달려야 하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사람에겐 눈물이 있다

울어도 괜찮다

우리는 눈물을 닦을 두 손이 있다

사람에게만

넘어지기 쉬운 두 발로 걷게 한 것은

신의 한 수다

잡을 수 있는 것은 잡고 일어서라

7

삶은 문장부호

인생은 각본 없는 반전 많은

이야기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물음표는 곡선으로 흔들리고

느낌표는 화살처럼 다가온다

쉼표는 짧아 아쉬운 부분이 있고

간단한 마침표는 생각이 짧으면 남발하기 쉽고

우리는 혼자만 살 수 없기에

어딘가에서라도 필요한 부분은 따와

사람들과 함께하고

붙여넣기를 한다

삶이 매끄럽지 못할 때는

쉼표는 더 찍어도 되지만

중간에 마침표 없는 이야기여야 한다

 

희로애락을 선물로 받은 인간으로서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슬프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산다면

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인생, 모범답안은 있으나 정답은 없어

모범답안도 참고 사항일 뿐

따라오는 누구에게도 나는

쉿, 인생을 가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삶에 희망적인 내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아픔 없는 세상은 죽음뿐이라고 느꼈을 때

마침표만은 찍지 않기로 했다

현재 진행형인 나는

마침표는 죽는 날까지 찍지 않기로

결론 내린다

끝까지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인생

마지막까지 가봐야 안다

https://youtu.be/wB-6DNXzXRU?si=80zR5LWB_zkG6T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