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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 주요인물(主要人物)-13) 인물(人物)-致雲 9世-永綏-涏10世-海-[3]

by choijooly 2024. 5. 17.

8. 주요인물(主要人物)

13)인 물(人物)-[3]

 

ㅇ 치운(致雲 9)

 

검재공 최수지(崔水智)의 손이며최이회공의 큰 아들이다.장사랑(9)이며

순룽(順陵:성종비 공혜황후 한씨 능) 참봉이고 손 최현공(崔晛公)의 귀로 증

통정대부 승정원 죄승지(3)이다.(세헌록)

 

ㅇ 영수(永綏 9)

 

공은 참정공 윤()의 다섯째 아들로서 호조참판공 정()의 생부이다

외 아들 정()을 백씨인 영견(永甄) 뒤로 출계시키니 자신의 뒤는 무후가

되었다.외 아들 정()을 출계 후 자손이 번성하여 내현제(內見齊)를 건립한

사람들도 거의 공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공을 위하여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인효(仁孝)와 성경(誠敬)의 지극함에서

울어 나온 것이다

최영수(崔永綏): 참판공 최효랑(崔孝良)의 손이며 현감공 최호(崔滬)의 증조부

 

ㅇ 정(10)

 

세조 때 단종 복위의 난을 평정하여 정난공신(涏難功臣)에 오른 증 형조참판공

최효량(崔孝良)의 증손이다. 공은 산청군 단성면 백곡리의 본 집에서 태어닜다.

어려서는 총명하엿고 정성해서는 단정하고 재주가 남보다 빼어났다.생부는 영수

(永綏)인데 백부인 진사공 영견(永甄)이 공을 양자로 삼았다.

아들 기변(琦抃)과 기준(琦準) 양공이 평왜회맹(平倭會盟)에 참가한 추은(推恩)으로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오위 도총부 부총관이다.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구인정 유허비문에 공은 학문과 선행으로 산해(山海)

선생의 문화에 왕래하였고, 각재 하항(河沆), 조계 류종지(柳宗智) 등 여러 현명한

선비들과 벗하여 친하게 지냈다. “ 고 하였다. 문 행이 있어 사림에서 공을 추증하였고

풍수학에 정통하여 오묘한 경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공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모방산(茅芳山) 아래에 집터를 잡았는데 강물이 산을 끼고

빙 둘러 있어 지세가 아주 빼어 났다. 그래서 공이 우뚝 서 있으니 우리 후손

중에 반드시 위세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진양지에는 최정공(崔涏公)이 어느 날 꿈을 꾸니 하늘에서 구슬 4개가 내려왔는데

그 가운데 한 개의 구슬이 밝지 아니하였다. 그가 네 아들을 낳아서 모두 기()자를

써서 이름을 지으니 그 꿈에 따른 구슬옥()의 뜻으로 기연(琦衍),기변(琦抃),

기필(琦弼),기준(琦準)이다. 세 아들이 무과에 올라 기연(琦衍)은 회녕만호

(會寧萬戶:外官職正4品武官職)가 되고 기변(琦抃)은 태안군수(泰安郡守)

되었으며 기준(琦準)은 형조좌랑(六曹에 소속된 5)이 되었는데

기필(琦弼)만이 과거에오르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기필(琦弼)에게 묻기를

네개의 구슬가운데 밝지못한 것은 누구인가?”라 하니 대답하기를

이는 회녕포(會寧浦)의큰 형님이다.“ 라 하여 듣는 이들 모두 절도(絶倒)

하였다.” 라고하였다. 임진왜란 뒤에 문헌이 없어져 자()가 무엇인지

생몰연대가 언제인지조차 알수가 없으니 하물며 그 나머지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진양지)ㅇ 정(10)

 

세조 때 단종 복위의 난을 평정하여 정난공신(涏難功臣)에 오른 증 형조참판공

최효량(崔孝良)의 증손이다. 공은 산청군 단성면 백곡리의 본 집에서 태어닜다.

어려서는 총명하엿고 정성해서는 단정하고 재주가 남보다 빼어났다.생부는 영수

(永綏)인데 백부인 진사공 영견(永甄)이 공을 양자로 삼았다.

아들 기변(琦抃)과 기준(琦準) 양공이 평왜회맹(平倭會盟)에 참가한 추은(推恩)으로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오위 도총부 부총관이다.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구인정 유허비문에 공은 학문과 선행으로 산해(山海)

선생의 문화에 왕래하였고, 각재 하항(河沆), 조계 류종지(柳宗智) 등 여러 현명한

선비들과 벗하여 친하게 지냈다. “ 고 하였다. 문 행이 있어 사림에서 공을 추증하였고

풍수학에 정통하여 오묘한 경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공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모방산(茅芳山) 아래에 집터를 잡았는데 강물이 산을 끼고

빙 둘러 있어 지세가 아주 빼어 났다. 그래서 공이 우뚝 서 있으니 우리 후손

중에 반드시 위세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진양지에는 최정공(崔涏公)이 어느 날 꿈을 꾸니 하늘에서 구슬 4개가 내려왔는데

그 가운데 한 개의 구슬이 밝지 아니하였다. 그가 네 아들을 낳아서 모두 기()자를

써서 이름을 지으니 그 꿈에 따른 구슬옥()의 뜻으로 기연(琦衍),기변(琦抃),

기필(琦弼),기준(琦準)이다. 세 아들이 무과에 올라 기연(琦衍)은 회녕만호

(會寧萬戶:外官職正4品武官職)가 되고 기변(琦抃)은 태안군수(泰安郡守)

되었으며 기준(琦準)은 형조좌랑(六曹에 소속된 5)이 되었는데

기필(琦弼)만이 과거에오르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기필(琦弼)에게 묻기를

네개의 구슬가운데 밝지못한 것은 누구인가?”라 하니 대답하기를

이는 회녕포(會寧浦)의큰 형님이다.“ 라 하여 듣는 이들 모두 절도(絶倒)

하였다.” 라고하였다. 임진왜란 뒤에 문헌이 없어져 자()가 무엇인지

생몰연대가 언제인지조차 알수가 없으니 하물며 그 나머지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진양지)

 

ㅇ 해 (海 10世)

 

자는 대함(大涵)이며 호는 송호(松湖)이다.검재공 최수지(崔水智)의 증손이며

최치운공의 장자이다. 일찍 송당 박 선생 문하에서 스힉하였고, 여러 동료들중에서는

그 학문이 매우 뛰어났으며 병오년 가을에 사마시 진사에 합격하였다.

문과 예비고사를 여러 번 통과 하였으나 끝내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성품이엄의정직(嚴毅正直)하며 진솔무화(眞率無華)하고 자체 교훈에 힘썼다.(세헌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