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효.열부(孝.烈婦)
3)정렬(貞烈)[7]
ㅇ 제씨(諸氏)
최상락공(崔祥樂公)의 처이다. 칠원인 제의조(諸毅朝)의 딸로 천성이 정숙하엿고
여자다운 풍모가 있었다. 남편이 돌림병으로 31살에 죽자 슬픔을 감추고 여러 시숙과
시동생에게 말하기를"죽은 사람은 이미 어쩔수 없다. 원컨데 몸을 잘라내는 슬픔을
참고 빨리 염습을 끝내어 장례를 마쳐 달라" 고 했다.
이윽고 파리 잡는 비상을 탄 물을 마시고 남편을 따라 죽었다.
당시 사람들이 여러번 관청에 이 사실을 알리는 글을 올렸으나 표창되지 않았다.
고성굼 마암면 석마리 도로변에 정려비가 있다.(고성지. 고성문화유적지)
(주) 초ㅛㅣ상락(崔祥樂 20世):서산공 최처회(崔處會)의 증손
ㅇ 조씨(趙氏)
함안 조씨이며 팜판 조태현(趙台鉉)의 딸이고 최중진공(崔仲鎭公)의 처이다.
조씨는 그의 동서인 이씨(崔奎鎭公의 妻)와 20살에 과부가 되었다.,
이씨가 말하기를 최씨 집안은 외동(獨子)은 외동으로 종가를 6대 이어 내려오는데
단지 우리 두 청상과부로 그 뜻을 잃어 버려 최씨의 후손을 세우지 못한다면 지하에
가서 무슨 낯으로 남편을 대할 수 있겠느냐 하고, 각기 친척 중에서 입양시켜두
짐안을 일으켜 제마다 여러 손자를 안게 되었다. 조씨는 그의 손자 최정기공
(崔正基公)을 의롭게 교육을 시켜 세상에서 우러러 보는 큰 학자로 키웠으니
호(號)를 가천(可川)이라 불렀다.지금 두 집안의 자손들이총총하게 들어사게 됨은
모두가 조씨, 이씨 두분의 덕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최씨의 중흥지조(中興之祖)가
되었다.(고성지)
(주)최중진(崔仲鎭 22世):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첨지공 최광섭(崔光燮)의 증손
(주)최중진(崔仲鎭)의 게자는 최오순공(崔五淳公)이고 최규진 공(崔奎鎭公)의
계자는 최덕승공(崔德升公)
ㅇ 조씨(曺氏)
조씨는 창녕인 사인(士人) 조선징(曺善徵)의 딸이며 전주인 최석구공(崔錫九公)의
처이다. 자성이 정숙하고 행의가 들 났더니 출가하여 부도를 다하며 옛 현원(賢媛)의
풍도가 있었다. 남편이 병들자 정성을 다하여 치료하고 하늘에 기도드리며
대신 병들기를 원한 세월이 3년이 되었으나, 마침 구원치 못하자 애통 읍혈로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나서 염습할 갖춤을 몸소 다하고 빈소를 차린 날로 부터
문을 닫고 음식을 거절하며 이날 밤에 조용히 자결하였으니 남편과 같은 날에
동혈(同穴)로 장사 하였다. 이때 고을 인사들이 이 소문을 듣고 경탄하여
그 사행(事行)을 적어 방백(方伯)에게 고하였으니 정표(旌表)에는 미급하였다.
(고성문화유적지)
(주)최석구(崔錫九 17世): 의숙공최강의 후이고 죽송헌공 최유박(崔由薄)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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