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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미음의 시(詩)

땅의 연가 (戀歌) / 문병란 (영상시 첨부)

by choijooly 2024. 11. 12.

 

 

♥ 땅의 연가 (戀歌) / 문병란 ♥

나는 땅이다

길게 누워있는 땅이다

누가 내 가슴을 갈아엎었는가?

누가 내 가슴에 말뚝을 박는가?

 

아픔을 참으며

오늘도 나는 누워있다

수많은 손들이 더듬고 파헤치고

내 수줍은 새벽의 나체 위에

가만히 쓰러지는 사람

농부의 때 묻은 발바닥이

내 부끄런 가슴에 입을 맞춘다

 

멋대로 사랑해버린 나의 육체

황토빛 욕망의 새벽 우으로

수줍은 안개의 잠옷이 내리고

연한 잠 속에서

나의 씨앗은 새순이 돋친다

 

철철 오줌을 갈기는 소리

곳곳에 새끼줄을 치는소리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

새벽마다 연한 내 가슴에

욕망의 말뚝을 박는다.

상냥하게 비명을 지르는 새벽녘

내 아픔을 밟으며

누가 기침을 하는가

5천 년의 기나긴 오줌을 받아먹고

걸걸한 백성의 눈물을 받아먹고

슬픈 씨앗을 키워온 가슴

누가 내 가슴에다 철조망을 치는가?

 

나를 사랑해다오 길게 누워

황톳빛 대낮 속으로 잠기는

앙상한 젖가슴 풀어 헤치고

아름다운 주인의 손길 기다리는

내 상처 받은 묵은 가슴 위에

빛나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다오!

 

짚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고무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군화가짓밟고간 다음에도

탱크가 으렁으렁 이빨을 갈고 간 다음에도

나는 다시땅이다 아픈 맨살이다

 

철철 갈기는 오줌소리 밑에서도

온갖 쓰레기 가래침 밑에서도

나는 다시 깨끗한 땅이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아픔이다

 

오늘 누가 이 땅에 빛깔을 칠하는가?

오늘 누가 이 땅에 멋대로 선을 긋는가

아무리 밟아도 소리하지 않는

갈라지고 때 묻은 발바닥 밑에서

한 줄기 아픔을 키우는 땅

어진 백성의 똥을 받아먹고

뚝뚝 떨어지는 진한 피를 받아먹고

더욱 기름진 역사의 발바닥 밑에서

땅은 뜨겁게 뜨겁게 울고 있다

땅의 연가 - 문병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