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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147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4]- 朴氏- 徐氏-禹氏 -尹氏-李氏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4]ㅇ 朴씨(朴氏)본관은 죽산(竹山)이고 경순공(敬順公)의 후손이며 박진부(朴鎭玞)의 딸이고 사인(士人) 전주 최규식공(崔圭式公)의 처이다박씨는 1883년 계미에 출생하여 1903년 나이 20에 최씨 가문에 우귀하여26살 되던 해에 부공(夫公)이 중병에 걸려 두천 기신(禱天祈神) 자성에도1908년 무신에 22살의 나이로 타계하니 ,곧 순사(殉死)코자 하였으나 생후 28일의아들과 70 고령 시부를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 독자(獨子)의 양육과 시부 봉양에지성을 닿한니 효부의 이름이 향리 사람들을 감동케 하였다.막거(漠居)한 뒤로 65년간의 눈물겨운 공적은 모두 망부(亡夫)를 위한 정영의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였으며. 끝내 현자가손(賢子佳孫) 좋은 가정을 이룩하고향년 8.. 2024. 6. 1.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3]-金氏-金氏-文氏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3] ㅇ 김씨(金氏)본관은 김해로 김영준(金榮俊)의 딸이며 최근홍공(崔根洪公)의 처이다.남편이 병이 들어 7년동안 누워있었는데,의원이 황사(黃蛇)가 제일 좋다고 하자김씨는 즉시 큰 자루를 만들어 몸사 독사를 잡으려고 숲속에 들어가 수백마리를사로 잡았다. 이같이 몇달을 계속하였으나 효험이 보이지 않자 칼로 자기허벅지 살을 떼 내어 그것을 달여 먹였더니 겨우 이틀의 연명에 불과하고결국 운명하였다.김씨는 다라 죽으려 하였으나 시부모가 마음에 걸려스스로죽을 것을 그만두고 시부모 봉양과 자식 가르침으로 마침내 가문을일으켰다.(환여승람. 고성지. 고성문화유적지)(주)최근홍(崔根洪 20世): 참봉공 최하(崔河)의 후이고 안락헌공(安樂軒公)최태수(崔泰穗)의 자 ㅇ 김씨(金氏).. 2024. 6. 1.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2]-權氏 -權氏 - 權氏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2] ㅇ 권씨(權氏)안동인이며 최병모공(崔秉模公)의 처이다. 권씨는 부덕이 있고 품행이 방정했다.남편이 요절하자 임신 중이어서 권씨는 해산을 기다렸다가 딸을 낳았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고 유서에 말하기를 " 아들을 낳았으면 나편의 뒤를 이으려했으나 지금 이와 같이 딸을 낳았으니 지하에 가서남편과 혼을 함께하는 것만못하다." 고 하며 남편을 따라 순사했다. 고성군 구만면 광덕리 도로변에 열녀비가 있다.(고성지.고성문화유적지)(주)최병모(崔秉模 24世):찰방공 최진호의 11세 손이며 최상욱공(崔祥郁公)의 현손 ㅇ 권씨(權氏)권씨는 안동인 권학진(權學振)의 딸이고 전주인 최몽옹공(崔夢洪公)의 처이다.권씨는 시부모를 잘 섬기고 남편에게도 한결같이 성경을 다 하였으며남.. 2024. 5. 31.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1]- 姜氏-康氏-郭氏-權氏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1] ㅇ 강씨(姜氏)정부인(貞夫人) 강씨는 진양인 강치언(姜致彦)의 딸이며 호조참판을 지낸 전주인 최제회공(崔濟會)의 처이다. 어려서 부터 영특하여 평판이 좋았으며시집을 와서는 지극한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였다.남편이 병이 들어 8년간 침상에 누워있자 약수저로 죽을 퍼먹이며 지극 정성으로 간호 하였다.남편의 상을 당하자 "지아비가 죽으며 지하를 따라 가는 것이 마땅한 예이다."라하고 자결하려했으나 아들 병덕(秉悳)이 거듭 눈물을 흘리면서 ㅁ반류하자자식이 아직 어려 제사를 맡길 곳이 없어 차마 자결하지 못하였다.장례를 치르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대상이 끝나자 곧 남편다라 자결하였다.향리에서 포열비(褒烈碑)를 세웠고 그 사적이 광양읍지에 실려있다.아들 병덕도 .. 2024. 5. 31.
9. 효. 열부(孝. 烈婦)-2)효부(孝婦)[3]- 車氏 - 崔氏 9. 효. 열부(孝. 烈婦)2)효부(孝婦)[3] ㅇ 차씨(車氏)본관은 연안(延安)이며 고려 조 문절공 차운암(車雲岩) 선생의 후이고 사인(士人)차익선(車益善)의 딸로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최광빈공(崔光빈公)의 6세손인전주인 최싱용공(崔相庸 譜名崔庸洛)의 처이다타고난 모습이 인자하여 여자로서의 부덕을 갖춘 훌륭한 규수로서 출가하였다.ㅚ씨 가문의 생활이 궁색하였으나 시부모를 효로서 공경하며 섬겼다.시부가 불행하게 질병으로 오랫동안 누워 지내니 약을 달이고 죽을 쑤어 수년동안에 하루같이 빔낮으로 간호에 매달렸으나 1925년 을축에 별세하니 차씨는남편과 함께 슬픔을 다하고 예에 따라 장례를 후회함이 없도록 정성껏 치루었다.상(喪)을 면하니 시모 박씨가 또 병이 깊어 몇년을 두고 낳지 않으니, 차씨는 새벽,저녁.. 2024. 5. 31.
9. 효. 열부(孝. 烈婦)-2)효부(孝婦)[2]-安氏-李氏-李氏 9. 효. 열부(孝. 烈婦)2)효부(孝婦)[2] ㅇ 안씨(安氏)안씨는 관(貫)이 순흥이고 배진(培鎭)의 여이며18실에 진주시 금곡면 죽곡 최낟중공(崔洛重公)의 처가 되었다. 안씨는 부군을 따라 일시 도일(渡日)하였다가 고국의시부모 걱정에 단긴으로 귀국하여 시부모릃 봉양하였다.안씨가 젊었을 때 시모와 동시에 출산하였는데 시모의 우즙(乳汁)ㅇ니 넉넉지 않아어린 시동생을 자신의 젖으로 기르기까지 하였다.. 수년후 시모읜 파평 윤씨의상을 당하여 남달리 애절한 심정으로 예를 다하여종상(終喪)하니 종당 향리에서그 효성에 감탄하였다. 시모 별세후 홀로 계시는 시부봉양을 위해 일심으로효순하였으나 만년에 중풍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니 이를ㄹ 흔연한 마음으로감당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실명의 악재까지 겸하였으나 병간호에 .. 2024.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