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주요인물(主要人物)
3) 유일(遺逸)
않고 전원에 묻혀 사는 학식높고 품행이 어질고 바른 분
ㅇ 상순(祥純 20世)
저는 보여(保汝)이며 호는(絅齋)이다. 공은 찰방공 최진호(崔振虎)의
7세손이며 만수재공(晩修齋公) 최광려(崔光礪)의 아들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족부(族父)인 최광윤공(崔光潤公)에게서 수학을
했는데 재능과 생각이 나날이 성취되었다.처음에는 음양학 등 제자백가의
책을 두루 보앗고 천문학에 대해 1년동안 힘을 쏟다가 곧 그만두고 사서
(四書)와 삼경(三經) 근사록(近思錄)에 전념하여 말하기를“이것이 바로눈을
빛나게 하는 올바른 학문이다.“ 라 하였다. 가숙(家塾)에서는 매일 초하루에
강독을 하엿고 봄과 가을에는 반드시 향음사례(鄕飮射禮)를 거행하였다.
1846년 병오에 예를 갗추어 대평(大坪)으로 가서 시랑 정 재 류 선생(侍郞
定齋柳先生)을 스승으로 섬기며 성리학(性理學)으로 사문(師門)의 추중(推重)을
받았다.이때부터 매년 한번씩 찾아갔으며 지도(智島)위 류 선생 유배지까지
따라갔는데 논의하고 질문하는 것이 정확하고 독창적이었다. 공은 일찍 집을
멀리 떠나 있었는데 부모가 연로하자 돌아와 좌우에서 모시며 날마다 밤이 깊은
뒤에야 물러났고 자신의 방으로 가서는 촛불을 밝히고 책을 읽었다.일찍 말하기를
“세상일은 아득하니 어찌 내마음을 두겠는가? 오직 책을 읽고 행동을 수양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라 하였고 또 ”사람의 7첟 몸뚱이는 한번 관속에 들어가면
먼지와 흙이 될 뿐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것은 몸이요, 다시 얻지 못하는
것은 세월이니 어찌 헛되이 노닐며 게으름을 부릴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저서는 태극문변(太極問辨), 사서석이(四書釋義), 상례요해(喪禮要解) 및
문집(文集) 6권이 있다(고성지.환여승람)
ㅇ상겸(祥謙 20世)
자는 치경(致敬)이고 호는 군산(君山)이며 효자 최관공(崔瓘公)의 손이다.
풍채가 호방하여 선비의 품위가 탁월하고 문학에 진취성이 뛰어났으나 자연에
묻혀서 거문고 타고 책 읽는 것으로 스스로의 즐거움을 하였다.유고가 있다
(환여승람)
(주)최상겸(崔祥謙) : 통덕랑공 최흥호의 7세손이고 최종연공(崔宗淵公 19世)
의 계자(系子)이다.
ㅇ상억(祥嶷 20世)
자는 내인(乃仁)이고 호는 농와(農窩)이며 훈신(勳臣) 최균공(崔均公)의 후이다.
경사(經史)에 박동하고 의리에 통달하여 손오(孫吳) 병법에 정통하고 경제의
기량(器量)이 있었다.(고성지. 환여승람)
(주)최상억(崔祥嶷) :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최재전공(崔載全公)의 증손
ㅇ환홍(煥洪 20世)
자는 영규(英奎)이고 호는 석주(石州)이며 참봉공 최하의 후인 유행 최대악공
(崔大岳公)의 증손이다. 외모가 빼어나게 준수하고 도량이 넓었다
종숙부인 화사공(花史公)에게 학문을 배워ㅏ 15살에 경서와 사서에 통달했고
서울에 유학하여 이름 난 석학들과 교류하였다. 과거에 여러번 응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숙을 만들어
학생을 지도하였다. 유고가 있다
.(환여승람)
ㅇ상덕(祥德 20世)
자는 익천(益天)이고 호는 용강(龍岡)이며 훈신 최균공(勳臣 崔均公)의 후이고
경재공(絅齋) 최상순(崔祥純)의 3종제이다. 효성과 우애가 남달랐으며
학문은 삼종형인 경재공(絅齋) 최상순(崔祥純)과 더불어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수(壽)로 통정(通政)이다.(환여승람)
(주)최상덕(崔祥德) : 약봉(藥蜂) 최욱공(崔燠公)의 증손인 최제회공(崔際會公)의
증손이며 최광택공(崔光宅公)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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