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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 주요인물(主要人物) -4) 유행(儒行) -[4]

by choijooly 2024. 5. 10.

8. 주요인물(主要人物)

4) 유행(儒行)

 

ㅇ근홍(根洪 20)

자는행언(幸彦)이고, 호는 구암(九庵)이며, 최태수공의 자이다.

성품은 도량이 넓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서 뜻이 원대하였다. 중부인

화사공의 문하에서 널리 읽고 사리에 통하는 올바른 경륜을 쌓았다.

불행하게 일찍 별세하니 사우들이 한탄하며 애석해 했다.(환여승람)

() 최근홍(崔根洪) : 찰방공 최하의 후이고 최치두공(崔致斗公)의 손

 

ㅇ 상준(祥駿 20)

자는 백고(伯顧), 호는 삼봉(三峯)이며, 최광묵공의 자이다.

문학과 효우로 사우들이 추중하였다(환여승람)

()최상준(崔祥駿):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은일(隱逸) 최제회공의 증손

 

ㅇ 응순(應舜 20)

자는 내선(乃善)이고, 호는 만해당(晩悔堂)이다.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는

학문을 받들어 이었다.(향교지)

()최응순(崔應舜): 의숙공 최강의 후이고 송재공 최위악(崔爲岳)의 자

 

ㅇ 응우(應禹 20)

 

자는 내휴(乃休)이고, 호는 죽헌(竹軒)이다.학문(學文)과 서예에 능하여

읍지에 실려있다.(향교지)

()최응우(崔應禹):의숙공 최강의 후이고 송재공 최위악(崔爲岳)의 자

 

ㅇ 응좌(應佐 20)

 

자는 내명(乃明)이고, 호는 사농와(士農窩)이다. 임천(林泉)에서 학문을 닦고

후학들을 권해서 관계에 나가게 하였다.어사 박대화(朴大和)가 헌호(軒號)

지었다.(향교지)

()최응좌(崔應佐):의숙공 최강의 후이고 송재공 최위악(崔爲岳)의 자

 

ㅇ 상가(祥可 20)

자는 응유(應儒)이고, 호는 평와(萍窩)이다. 의지와 품행이 청고(淸高)하고

문학을 크게 성취시켜 스스로 조심하여 지키면서 더욱 돈독하게 하니

사람들이 모두 경복(敬服)하였다.(향교지)

()최상가(崔祥可) :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죽파공 최광남(崔光南)의 자

 

ㅇ 상우(祥右 20)

자는 대첨(大瞻)이고, 호는 연산(蓮山)이다. 타고난 성품이 순미(純美)하고

유계당 류주목(遊溪堂柳疇睦) 문하에서 문예로 감역(監役)이라 불렀으며

유집이 있다.(향교지)

()최상우(崔祥右):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최광득공(崔光得公)의 자

 

ㅇ 상욱(祥郁 20)

자는 자운(子雲l, 호는 서농(書農)이다. 자연 속에 숨어살며 가난속에서도

마음 편히 지내는데, 그의 자부 이천이씨가 시집올 때에 김하서(金河西)

그린 묵죽도(墨竹圖)를 상답 속에 넣어온 것을 보고 읊은 시에한짐의

옷상자를 한 노복이 지고 왔네. 그 속에 들어있는 한 쌍의 묵죽도는

현금보다 비싸다네. 우리 집에 행운들어 귀한 손자 얻는다면 도()를 향한

나의 마음 평생 소원 풀릴 것을라고 하였다.(향교지)

()최상욱(崔祥郁):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송와공 최광진(崔光震)의 자

 

ㅇ롱(21)

자는 약여(躍汝)이며, 호는 만오당(晩悟堂)이다. 공은 찰방공 최진호의

8세 손이고 산포공 최익대의 증손이며 구헌공 최상갑의 아들이다.

어려서 호방한 성격으로 어디에 매이지 않았으며 총명함이 남보다 뛰어나

겨우 학문에 입문할 나이에 일기를 몇 백자나 썼으며 붓을 움직이는 것이

마치 날아가는 것 같으니 부친과 형이 기특하게 여기고 사랑하였다.

15살에 형인 상사공(上舍公)과 함께 향시에 합격하였지만 나이가 어려서

진사시에서 떨어졌다. 타고난 성품이 원만하고 참 되었으며 자연스러움을

좋아하여 외모를 꾸미지 않았다.부모를 섬길 때에는 온화한 얼굴빛으로

대했고 형제와는 우애가 돈독했으며 정재 류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정재 류치명 선생이 나라의 예법을 논하다가 지도(智島)로 유배 간 것을

알고 상사공(上舍公)과 더불어 더위를 무릅쓰고 배를 저어가서 수십일

동안 모시고 있었는데 선생에게서 감동 받은바가 커서 자기 집의 편액을

만오명창(晩悟明牕)이라 하였다.(진양속지)

 

ㅇ운(21)

자는 여선(汝善)이며,호는 지와(止窩)이다.공은 찰방공 최진호의 8세손이고

산포공 최익대의 증손이며 구헌공 최상갑의 아들이다.

공은 1840년 헌종 경자에 생원에 합격하였는데 정재 류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젊어서부터 총민하고 경발(警拔)하더니 공자, 맹자,정자, 주자의

사자(四子)와 육경(六經)에 힘쓰고 마을 사람들을 이끌어서 퇴계 선생의

향약을 본떠 권선징악토록 하였고 또 필법에도 능하였다.(고성지.진양속지)

 

ㅇ경병(瓊秉 21)

자는 영호(永好)이며, 호는 수당(修堂)이다. 공은 죽당공 최탁의 9세손이고

법산공(法山公) 최수민(崔粹民)의 손자이며 최제하공(崔濟夏公)의 아들이다.

성품은 돈후하고 곹았으며 일생동안 곤궁하였으나 독서를 하면서도 명망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스승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스스로 와서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거절하지 않았다. 공이 거처하던 경현당(景賢堂)으로

찾아오는 제자들이 날마다 너무 많아서 그들을 다 수용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 옆에 당이 만들어졌는데 이름을 신천(新川)이라 하였다.

지금의 하동 북천에 있는데 지세가 높고 툭 트여서 조망이 매우 좋다.

이 신천서당의 기문을 행주 기로선(幸州奇老善)이 썼다. 공은 평소에

태간 회산 이택환(台諫晦山李宅煥), 고암 권상연(顧庵權相淵)과 서로 벗이

되어 친했는데 이들은 모두 현자(賢者)로 세상을 숨어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주화 이계(住花李溪), 우직 권전(寓稷權田)과 서로 오고가며 서로 즐거워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동지 10여명과 화계에서 계를 모았는데 이름하여

화계십일(花溪十逸 )이라 하였다.하동군 북천면 대야천의 화정도곡에 있으니

남향인사 최경병, 최제효 등 50인이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유식하는 곳으로

삼았는데, 이름하여 십일대(十逸臺)라 하고 후인들이 추모하여 계를 모아

비를 세워 사적을 기록하니 의성 김황이 비문을 지었다(진양속지)

 

ㅇ필채(必彩 21)

자는 자백(子白)이고, 호는 운정(雲亭)이다.효자 최관공(崔瓘公)

증손이다. 오로지 문학에만 뜻을 두고 경리에만 심취하여 은거로 자적하니

사우들로부터 명망이 높았다. 유고가 잇다.(환여승람)

()최필채(崔必彩):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찰방공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