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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 주요인물(主要人物) -4) 유행(儒行) -[2]

by choijooly 2024. 5. 10.

 

8. 주요인물(主要人物)

4) 유행(儒行)

 

o 붕대(鵬大 18)

자는 창숙(昌叔)이며 호는 화포(花圃)이다. 공은 찰방공 초진호의 5세손이며

영모 재공 최진추(崔震樞)의 손이고 동교동 최응희의 아들이다.

부친은 이미 돌아가셨고 모친께서 불쌍히 여겨 항상 가슴 가득 회포를 안고 살았다.

14살에 모친마져 돌아가시니막내 숙부에게 의지하였는데 숙부는

불쌍히 여기고 잘 대해주어 덕성을 이루도록 하엿다.

만년에 숙부구 집을 옮기자 한달에 한두번 찾아가서 뵈었으며 숫부를 잘 봉양해 드렸다.

자식들을 가르치다가 비록 효도를 하고자 하나 누구에게 효도를 할 것인가

라는 대목에 이르면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병인년812일 장사 날에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사람들은 모두 상여를 메고 가는 짓이 좋지않다고걱정하였다.

그런데 발인 때가 되자 갑자기 쌍무지개가 집에서부터 장지를 가로 질러 생겨나

비는 상여를 따라 내리지 않았고 좌우 다른 곳에서는 폭우가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밤이 되자 하늘이 청량하고 기운이 맑아져서 한점의 구름도 없게 되었다.

다음 날 반혼 할 때 또 무지개가 전날처럼 생겨났다. 혼백을 실은 수레가 집에

도착하자 하늘에소 또 비가 내리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장례식에 모인 손님들이

모두 극구 칭찬하여 살아 생전에 덕행이세상에 흠모 받아 과연

신선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고성지)

 

o 광 주(光柱 19)

자는 경약(擎若)이고 학문과 행의(行誼)가 있어 읍지(邑誌)에 실려있다.

(향교지)

()광주(崔光柱) :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상재공 최제회(崔際會)의 손

 

o 광 익(光翌 19)

호는묵당(黙堂)이고 훈신 최균공의 후이다.학문이 돈독하고 행실에 힘썼으며

문장을 다듬는데 힘쓰지 않고 임천(林泉)에서 삶을 마치니 많은 사람들이

공경하여 표본으로 삼았다.(환여승람)

()최광익(崔光翌) : 통덕랑공 최흥호의 6세손이고 최재전공(崔載全公)의 손

 

o 광 묵(光黙 19)

자는 경침(景沈)이고 호는 옥산(玉山)이다. 최시대공(崔始大公)의 자이다.

가정에서의 가르침인 효우와 시례(詩禮)를 이어받아 종족의 모범이되고

향당이 추앙하였다.(환여승람)

()최광묵(崔光黙):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상제공최제회(崔際會)의 손

 

o 광 려(光 礪 19)

 

는 내용(乃用)이고 호는 만수재(晩修齋)이다.문학과 행의로 이름이 들났으며

류정재 치명(柳定齋致明)과 종유하였다.(환여승람)

() 최광려(光礪) :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상제공최제회(崔際會)의 손

 

o 태 경(泰敬 19)

자는 내겸(乃謙)이고 호는 국헌(菊軒)이다. 천성이 강개하고 의지와 기개가

고명하여 행실을 돈독히 하고 스스로 지키니 범속에서 벗어 난 표본이라

하여 사람들의 추앙이 많앗다. 수로 통정이다.(환여승람)

() 최태경(泰敬) : 참방공 최하의 후이고 강은공 최세대(崔世大)의 증손

 

o 태 정(泰禎 19)

자는 처안(處安)이고 호는 묵헌(墨軒)이며 최대악공(崔大岳公)의 손이다.

성품이 온순하고 공손하여 도량이 컸다. 학문에 힘쓰고 스스로 지키며

사물은 주고 받는데도 엄격하여 사람의 도리를 다하니 사우들이 크게

추종하였다.(환여승람)

 

()최태정(崔泰禎) : 참방공 최하의 후이고 동계공 최치두(崔致斗)의 자

내용(乃用)이고 호는 만수재(晩修齋)이다.문학과 행의로 이름이 들났으며

류정재 치명(柳定齋致明)과 종유하였다.(환여승람)

() 최광려(光礪) :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상제공최제회(崔際會)의 손

 

o 태 경(泰敬 19)

자는 내겸(乃謙)이고 호는 국헌(菊軒)이다. 천성이 강개하고 의지와 기개가

고명하여 행실을 돈독히 하고 스스로 지키니 범속에서 벗어 난 표본이라

하여 사람들의 추앙이 많앗다. 수로 통정이다.(환여승람)

() 최태경(泰敬) : 참방공 최하의 후이고 강은공 최세대(崔世大)의 증손

 

o 태 정(泰禎 19)

자는 처안(處安)이고 호는 묵헌(墨軒)이며 최대악공(崔大岳公)의 손이다.

성품이 온순하고 공손하여 도량이 컸다. 학문에 힘쓰고 스스로 지키며

사물은 주고 받는데도 엄격하여 사람의 도리를 다하니 사우들이 크게

추종하였다.(환여승람)

()최태정(崔泰禎) : 참방공 최하의 후이고 동계공 최치두(崔致斗)의 자

 

o 태 수(泰穗 19)

자는 사길(士吉)이다. 성품은 크고 원만하였으며 행실이 돈독하여 의리를

굳게 지키면서 영리를 구하지 않고 임천(林泉)에서 생을 마쳤다.

만년에는 거처하는 곳을 안락헌(安樂軒)이라 이름하였다. 형인 화사공

(花史公)과 더불어 경의(經義)를 강론하며 즐거움에 잠김이

그 뜻이 있다.(환여승람)

()최태수(崔泰穗) : 참방공 최하의 후이고 동계공 최치두(崔致斗)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