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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 주요인물(主要人物 - 11) 명환(名宦)- 응룡(應龍 9世) - [1-2] 계속

by choijooly 2024. 5. 16.

8. 주요인물(主要人物)

11) 명환(名宦) - (1-2)

 

ㅇ응룡(應龍 9世)

**송강선생(松亭先生)의 군신(君臣) 문답

-- 왕의 하문( 王의 下問 )

-(先生의 上答)은 앞에서 계속됩니다

 

-선생의 상답 (先生의 上答)-

 

신(臣)이 듣자옵건데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은 마음(一心)에 있으며

그 근본을 밝히는 요체는 학문을 숭상하는 것입니다.무릇 학문을 소중히

알고 그것을 닦는 길은 정성을 다하여 사소한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배움

으로서 밝은 정신으로 시비와 선악을 판별하는 것입니다. 즉 현사(賢邪)와

치란(治亂)의 기틀을 잡는 것은 학문을 닦고 경륜을 쌓아 올리는 가운데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왕(帝王)은 치화(治化)의 길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데 주상전하(主上殿下)께서는 영명특달(英明特達)한 자품으로

조종(祖宗)의 그윽한 운기(運氣)를 이어받아 덕화(德化)의 공을이루시어

그 밝음의 실(實)과 그 공덕이 이르지 않ㄴ는 곳이 없습니다

.

그러면서도 이에 흡족해 하지 않으시고 더욱 정진하고 계십니다. 臣등이어전에서

主上이 학문을 닦고 진리를 탐구하고 정도를 밟으시는데 보필하면서그 책무를

다하고자 미력을 받침으로써 마침내 학문의 극치를 터득하고공덕을 이루시니

오호라 ! 그것은 나라를 위하는 근본요체를 살피고 친히몸을 낮추어서겸허한

마음으로써 정진하시었기 때문입니다.臣 이 일편단심으로어지신 분부를

받들어 모셨으나 어리석으니 그 공덕의만분의 일이라도 보탬이되겠사오니까 ?

臣이 성책(聖策)을 엎드려 봉독하오니“자고로 人君이 治安을원하지 않음이

아니었으나 무위로 그치고 마는것은그 까닭이 무엇인가 ? “ 하시었습니다.

臣 이 듣자옵건데 治安을 원하고危亡을 마다하며 善을 즐기고 惡을 미워함은

인지상정이라 하겠습니다.만약 능히 배워서 오로지 한마음의 이치를 깨우치지

않고 경건하게 배움의공을 이루지 아니 하면 이해(利害)에 현혹되여 자세를

흩트리고 기호와 욕심이쉽게 편승함으로써 治世의 근본인 한마음(一心)과학문의

길에서 벗어나고 혼폐(昏蔽)를거듭하는 가운데 정도를 벗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안일무사한 길의 궁극은 治安을 원하는 날에서 멀리 떨어져나가 危亡의 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백성을 다스리는 人君된 자는 때로는 治安을 누리는

상도(常 道)에 부응하지 않고도 오래 치안의 실(實)을 누리는 경우가 있으나

저 善을 따르려는 상정(常情)으로써 정도를 지키는마음에 부응하지 않을 수가

있셌습니가?臣이 聖策을 봉독하오니 “ 높은 스승에게 배운 훌륭한 학자가정도를

궁리하는것을 사뢰고 명본(明本)의 대의를 다하지 않고 있다. “ 고하셨습니다.

 

臣이 듣건데 나라의 치란은 치란의 때를 따라 있는 것이 아니고人君의 一心 가운데

사(邪)와 정(正)의 소장(消長)에 근원하는 것이며 소장은소장하는 시대에 따라있는

것이 아니고 人君의 正道를 따르느냐 邪道를 따르느냐에그 기틀이 있는 것입니다.

人君의 유일(惟一)에 정심(精心)하여 그 극치를 이루고조야(朝野)에 부조리를

배제하면 小人의 길은 막혀 버리고 위란(危亂)의소지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만약 친사선유(親師選儒)가 강학(講學)이니 궁리(窮理)니 하면서도 헛되이 명분에만

억메여 治亂을 살피고 邪正을 변론하는데 요식에만 치우쳐강학(講學)궁리(窮理)의

참 뜻에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그 소위(所爲) 강(講)이라는것은 못 다함에

그칠 것이며그 소위 궁(窮)이라는 것은 겉으로만 맴돌고 말것입니다.

 

治亂의 기틀이 섞여서 하나가 되고 危亡의 화근은 태평성대 가운데 잠복

하고 正과 邪의 변론은 잡산(雜散) 이동(異同)이 되며 治安을 허물어뜨리는

잡동(雜同)은 폐습을 지키고 누섭을 버리지 못하는 가운데 더욱 기성을 부릴

것이다. 이러한 것은 講이 精하지 못하고 窮이 實하지 않고 본원(本源)을 밝히는

일편단심이 족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즉 人 君은 가히 治亂에만 억메이지 않아야

하며 邪와 正의 근본아 한가닥 마음가운데 있으니 스스로를 엄하게 다스리는

공덕을 이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臣이 聖策을 봉독하오니 “主가 학문이 미숙하고

덕이 부족하여 君子를 치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니 무슨 방도가 없을까 ?“ 하였습니다

臣은 敬이 가장 주요한 德目이라고 들었습니다. 학문을 닦는 요체도 바로 여기서

확립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노력도 이것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자고로 人君이 때로는 학문은 부족하여도 정심(精心)하면 治安을 누리었습니다.

그러나 허상(虛像)의 말단과 만화(萬化)의 근본을 가리지 못하고 아마도 窮理에

대해서 정심하는데 미진함이 있으면 평화와 화란(禍亂)은 서로 원인이 되고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일어나고 가라앉은 것이 무성함도 여기에 있으며 어질고 그릇됨을

가리는 것이 난처함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하여

항상 敬에 치중하면 반드시 격물치지(格物致知)로 학문의 표준과 목적에 상부하고

실천을 통하여 정사의 대도를 밝히게 될 것입니다. 敬을 신변 가까이 견실히 간직하고

복용(服庸)하면 마음은 항상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을 것이며 이를 멀리학고 惡에

추종하면 비단 호색(好色) 할 뿐만 아니라 악취마져 풍길 것이며 학문의 길은

사라지고 위정(爲政)의 방도는 막힐 것입니다.

 

君子가 政事에 나서면 임금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 될 것이나 小人이 政事에

나서서王의 측근이 되면 홍로(紅爐)에 점설(點雪)하는 골이 될 것이며 동류를꺼리고

서로미루어 가면서 이권(利權)은 환영하고 正道는 배척하면서 서로 감격하고

기뻐할것입니다.그러나 면전에서 아첨하고 돌아서서는 모함하는 자들은 군자의

마음은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人君이 된 자는 가히 敬으로 존심(存心)하지

않고萬化의 도도한 흐름에서 벗어 날 수 있겠습니까 ?

臣이 성책을 봉독하오니 “경세(經世)를 궁리하고 君子를 처용하는 방책을 제시하면

子가 장차 이를 살피겠노라,“ 하시었습니다. 臣이 초야에서 발신한 천한 신분으로

어찌 성상의 하문에 충분히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서전(書傳)에 말하기를

“일은 시작에서부터 끝장을 살피고 못미친 점이 없도록 하라” 하고 또한

“ 만약에 자식을 낳았으나 죽고 없으면 처음 태어났다는 것과 생을 마친 것을

하늘의 뜻과 밝은 가르침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라 하셨습니다

 

금야(今也)에 殿下께서는 한없는 사랑의 뜻에 부응하시고 正道의 기본을 지키시면

만백성의 행복이 이에 연계되고 옛 임금의 크나큰 뜻에 다시 솟아오를 것입니다.

처음에 聖君의 길을 배우시고 만세(萬世)에 이르는 넓고 큰 태평의 기조를

닦으심이 지당할 것입니다. 대체로 보아 帝王의 학문은 심성(心性)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帝王의 정치는 모두 一心에 기본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고로 오로지

정일(精一)하는 요(堯) 임금의 道를 배워서 요순(堯舜)의 성세를 이룩할 것이며

나라를 세워 창업하는 자는 은(殷)나라의 탕(湯),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의

道를 배워서 나라를 통일하고 치화(治化)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데

殿下께서는 堯 임금의 “慎”, 舜임금의“敬”, 禹王의 “勤”, 湯王의 “智”와 또한

文王의 “重”, 武王의 “强”을 당대의 급선무로 삼으셔야 할 것입니다.

견문이 이르지 못하고 경험이 미치지 못한 것에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해이하고 오만하여 사리에 맞지 않은 편벽된 마음과 깨끗하지 못한 욕심이 帝王의

길에 해를 끼치지 않게하여 천리(天理)의 正道인 즉 본심에 순응하고 공명정대하게

사물을 다루어 나가면 帝王의 길은 딴 곳에 있지 아니합니다.그러하오면 治亂의

기틀과 邪와 正의 변증(辯證)은 맑고 밝은 가운데 日月처럼 뚜렷할 것이며

아조(我朝)의 치효(治效)는 夏나라 殷나라 周나라등 三大와 더불어 바견할 바가

되겠습니다. 그러하온데 어찌 학문의 무효와 능철(能哲)의 미전함을 恨하오리까.

엎드려 원하옵건데 殿下께서는 이점에 유의 하소서, 臣은 무지함을 무릅쓰고

이 어리석은 글을 올리니 그 죄가 크옵니다.(해평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