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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총람(世德叢覽)

8.주요인물(主要人物)-13) 인물(人物)-珪 18世-致章 -始大-璡 -慶晉 18世 [15]

by choijooly 2024. 5. 20.

8. 주요인물(主要人物)

13)인 물(人物)-[15]

 

ㅇ규(珪18世)

자는 화옥(華玉)이며 호는 매국당(梅菊堂)이다. 공은 통덕랑공 최흥호의

5세손이며 평구도 찰방공인 최홍(崔洪)의 현손이고 최윤전공(崔胤全公)의

아들이다. 공은 고성군 상리면 척정의 한 누각위에 살고 있었는데,

그 왼편에 매화를 심고 오른 편에 국화를 심어 뜰을 체워놓고 자호를

매국당주인(梅菊堂主人)이라 하였다. 어떤 길손이 지나가다가 공에게

묻기를 “물과 땅에 좋아 할만한 꽃이 매우 많은데, 그대는 매화와 국화만을

심어 놓았으니 그 뜻이 어디 있느냐?“ 고 물었다.

 

공이 말하기를 매화는 군자라고 일컫고 국화는 은둔자라 일컬었으니 내가 취한

것이라 하고임포(林浦)의 맑은 운을 얻어 서호(西湖)의 봄 흥취가 적지 않으며

도연명의정신을 사모하여 율리(栗里:도연명의 고향)의 가을 상념이 넉넉하지요.

번뇌를 떨처버리니 세상의 먼지를 씻을 수 있어 맑고 높게, 그리고 깨끗하게

살수 있습니다. 매화 꽃이 달밤이면 가득 넘쳐서 나의 시흥(詩興)을 도와주며,

국화 꽃이 아침 이슬에 넘실거려 나의 취흥을 돋우어 준답니다.

이 정취를 받아들여 이름을 지은 것이니 우연은 아닙니다.“ 고 하였다

.

길손이 듣고서 탄식하기를 “화초와 식물이 사람에게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다만 기품에 감응하여 흥취를 붙인 것일 뿐이다. 풀잎을 보고 자신을 깨끗이 할

생각을 하고 꽃을 찾으며 도를 밝히는 즐거움을 갖는다면, 어찌 서호(西湖)의

봄 흥취와율리(栗里)의 가을 상념뿐이겠는가.?“ 라 하였다.

 

공은 옷깃을 여미고 인사하며 말하기를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라 하니

길손이마침내 기문을 짓고 이어서 시를 지어 주었다. 길손이 누구인가를 공이 묻자

용재선생(傭齋先生) 강덕부(姜德溥)라 하였다. 그 시에 이르기를 “강가에 맑고

그윽하게 묻혀사니, 뒤에는 매화심고 앞에는 국화 심었네. 서호(西湖)의 맑은

감상이요 심양의 흥취니, 번뇌를 씻어낸 것 몇 년이나 되었소? "라 하였다.

(세헌록)

 

ㅇ치장(致章18世)

공의 자는 키문(致文)이고 호는 계산(溪山)이며 진사공 최세강(崔世康)의

5세손이다. 공이 어릴때 부공(父公)이 병자호란에 전사하였으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불운을 껶었다. 조선 영조 때 공이 33살 되던 1728년 무신에

이인좌(李仁佐)의 난이 일어나자, 그 여파가 공이 거처했던 금곡의 풍헌(風憲:

면. 리의 일을 맡아 보았음)에 까지 무질서한 사태에 이르렀다. 이에 공은

의병을 규합하여 풍헌의 질서를 바로 잡았고, 이 후에 진주부사로 부터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 공의 보주(譜注)에 " 기국(氣局)이 크고 덕행을 존중받았으며

무신지변(戊申之變)에 창의하여 공이 있었다." 라 하였다.

1975년 을묘에 공의 7 세손인 만산공(晩山公 洛道)이 공의 묘 앞에

돌을 세워 공의 기백과 의절을 찬하였다.(진사공파 개요)

 

ㅇ시대(始大 18世)

자는 내초(來初)이고 호는 괴당(塊堂)이며 문학과 효우가 돈독하였다.

경사(經史) 탐구에 몰입하고 훈회(訓誨)하니 많은 제자들이 다 성취하였다.

유고가 있다. (향교지)

(주)최시대(崔始大) :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약봉공 최욱(崔燠)의 현손

ㅇ진(璡18世)

자는 진옥(進玉)이고 호는 삼성재(三省齋)이다. 천성이 돈후하고 재주가

혜민하여 서당에서 글을 배울 때 스승의 감독과 독려가 없어도 스스로 면학하고

자구(字句)의 뜻을 미쳐 가르치지 않아도 그 뜻을 해득하여 부공인 사호공

(載全)께서 매우 사랑하였다.

 

장성해서는 경서, 제자백가서, 사기등의 책을 벼슬보다 더 중히 여겪다.

당시의 선비들이 과거에 전념함을 보고" 건비는 마땅히 자신의 심중에서

학문을 찾아야지,밖에 있는 며리에만 눈을 돌려서야 되겠느냐?"라며

비난 하였다. 맛 좋은 음식이 생기면 반드시 품속에 넣어와서 부모를 봉양하고

병이 나면 손수 약을 달여 정성을 다하였으며 상(喪)을 당하여서는 예에 따라

마치고 슬픔은 도를 넘을 정도 었다. 이같은 공의 명성이 알려저 향내의

사표가 되었다.(묘비문)

(주)최진(崔璡): 통덕랑공 최흥호의 5세손이고 사호공 최재전(崔載全)의 자.

 

ㅇ경진(慶晉 18世)

자는 진칙(進則)이고 호는 봉암(鳳岩)이다. 학문과 행의가 있어 향당이

추중하였으며 수(壽)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오르다(족보)

(주)최경진(崔慶晉): 의숙공 최강의 후이고 죽송헌공 최유박(崔由礡)의

손이며 해연공 최석오(崔錫五)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