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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총람(世德叢覽)

주요인물(主要人物)-13)인물:麒淳23世-景淳-謹次退溪先生 韻 [27]

by choijooly 2024. 5. 23.

8. 주요인물(主要人物)

13)인 물(人物)-[27]

 

ㅇ기순(麒淳 23世)

자는 의현(宜見)이고 호는 곤산(昆山)이다. 가세가 300여석의 중농이었으나 아우

계산공(季山公)에게만 글을 읽게하고 공은 맏노릇으로 농감(農監)하면서 가업ㅂ을

이어가는 데만 전념하였다. 선조의 제사를 받들고 묘도를 꾸며 숭조치가(崇祖治家)의

본보기로 향당에서 추증하였다.

더구나 아우 계산공과 선친인 백서공 성렬(栢捿公 成烈)을 위하여 백운정(白雲亭)을

세우고 추모하다가 조긍섭의 권유로 뒷산 기슭으로 옮겨 세워 이름을 소완정

(小宛亭)이라 개칭하니 그 효성에 모두 감복하였다.

(주)최기순(崔麒淳): 찰방공 최진호의 자인 만회공 즙(晩悔公 濈)의 9세손이고

최광성공(崔光成公)의 현손

 

ㅇ경순(景淳 23世)

자는 상현(尙見)이며 호는 계산(季山)이다.어릴 때 부터 영민하여 남에게

지는 일이 없었으며 배움에 나가서는 스승이 독려하지 아니하여도 외우고 읽으며

중도에서그만 두는 일이 없었다.자라서는 문장을 좋아하여 시를 짓는데 전심하였고

생각을할 때에는 깊이 파고들어 청신하고 특이한 글귀만 골라 썼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시인답다고 칭찬하였다.성질은 의기심이 강하고 호탕하였으며

많은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세상에 보람있는 일을 남기고 싶다고 말하며

늘 망국의 한을 개탄하였는데 가끔 시문 속에서도 그의 비정한

감정을 엿볼 수가 있다.

 

분가후에는 생업을 맡게 되고 농사일도 돌봐야 하니 학문연구에 방해가 된다고

늘 탄식하였다.유림의 서당에 자주 나가서 후생들을 격려하니 서생들은 공을

볼때 마다 더욱 분발하여 노력하며 공의 말을 귀담아 듣고 오랫동안 머무르며

지도해 주기를 원했다.일찍이 백공(伯公)과 함께 선부군(先府君)을 위한 백운정

(白雲亭)을 안산에 건립하고 겸하여 자손들이 강수 할 장소로삼았으나 한때

심재 조선생(曺극燮)이 이곳에 와서 보고 뒷산 기슭우로 옮겨세우도록한 후

(小宛亭)이라고 개명하고 기문도 지어 주었는데,이는 대개 공 형제의 효우의

정성에 깊이 감동하여 마음을 열고 허락한 것으로 난세에 탈없이 처신하는

방법을 일러 준 것이라 생각된다. 중년 이후로는 경영하는 일이

크게 기울어 유랑생활을 할 때도 있었다.

사람을 대할때에는 은근한 정으로 화기가 넘쳤고 시문은 점점 더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는데,수년 뒤에는 세상을 피하여 종적을 감추고 친구 몇 명과 산에

들어가세월을 보내면서 하루도 시를 읊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근차 퇴계선생 운(謹次退溪先生 韻):퇴계선생 운을 받들어 

재주 많고 예의 갖춘 영남선비가 온화한 성품을 지녀 청금 띠 매었도다.

바위틈에 지은 집 다 연기 엉켰으며 푸른산 구름 위에 병풍 둘렀네.

나찰(아귀)이 도를 묻는 혼미한 세상에서 안개속 묻힌 채 숨어 살게 되는구나.

퇴계선생 가신 후 세월은 흘렀건만 후학들 누가있어 학문이어 가겠는가?

신선 사는 선경근처 벽촌있는데 골이 깊고 숲이 짙어 대낮에도 어둡다오.

계곡의 여울 물 머리맡에 흐르고 창문 열면 맑은 바람 스며드는 곳.

세상사 많은 근심 모두 잊고서 향기 높은 연꽃떨기 곁에 사는데, 그 명산

어디냐고 묻는 사람있으면 낙수 남쪽 산이 두른 구만이라 대답하오.

(溫溫襟佩靑 茶煙凝石室 山色上雲屛 羅刹堪聞道 紫陽千載後

維記聚星亭 洞僻仙綠近 林深日影長 枕流漱石瀨 開戶納松凉

渾忘千般事 同齎一辨香 名山何處問 防岳出汾陽) (계산유고)

 

(주)최경순(崔景淳):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백서공 최성렬(崔成烈)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