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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Gachen-佳川)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 주요인물(主要人物 - 10) 충의(忠義) -彦郁-彦亮-山輝-文世- [2]

by choijooly 2024. 5. 15.

8. 주요인물(主要人物)

10)충 의(忠義- (2)

 

ㅇ언욱(彦郁11)

자는 문약(文若)이며 낙헌공 최수인(崔水仁)의 현손이고 최구지(崔九池)공의

장자이다. 공은 1547년 명종 정미생인데 임진와란 때 감사인 김수(金晬)

달아나자 군.현의 관리들이 모두 달아나 버리니 아우 언량공(彦亮公)이 와서

임금께서 몽진하신다고 우리들이 함께 달이날 수 있겠습니까?”라 하자

아우와 함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하였다.

김학봉(金鶴峰)선생이 함안에서 단성으로 오자 단성현의 주민들을 의병으로

모집하여 단성의 백마산성에 의병의 깃발을 세우고 성을 쌓아 주둔하였다.

포위된 진주를 뜷고 나가 고성의 의병들과 합세하여 정진(鼎津), 사랑(蛇梁).

황석(黃石)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안신갑(安信甲)과 같이 산음(山蔭)

지키다가 경호(鏡湖)에서 전사하였다.(족보)

 

ㅇ 언량(彦亮 11)

자는 문경(文敬)이며 호는 월촌(月村)이다.

공은 낙헌공(樂軒公) 최수인(崔水仁)의 현손이고 최구지(崔九池)공의 차자이다

공은 1550년 명종 경술 524일에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기개가 커서

조그마한 일에 구애를 받지 않았고, 장성해서는 선조인 낙헌공의 유지를

계승하여 나태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자신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임진왜란 때 김수(金晬)가 달아나자 군.현의 관리들이 모두 달아나 버렸다.

공이 형인 언욱공(彦郁公)에게 말하기를 임금께서 몽진하신다고 우리들이 함께

달아날 수 있겠습니까?“ 라 하고 마침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단성현(丹城縣)의 서리(胥吏)들을 깨우쳐서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단성의 백마산에

의병의 깃발을 세우고 성을 쌓아 주둔하니 군사들의 소리가 점차 진동하게 되었다.

김경근(金景謹)도 북쪽에서 의병을 일으켜 남쪽에서 호응하여 병사를 나누어 지키니

공이 지킨 곳은 적벽강(赤璧江) 입구였다. 깃발을 성대히 세우고 위세를 펼치며

백성들로 하여금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산과 계곡을 돌아다니며 유격전을

펼치게 하며, 날마다 소를 잡고 술을 먹이며 군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초유사인 김성일이 단성에 와서 공에게 장수의 재질이 있음을 알고 별장(別將)으로

삼아 단성현감의 일을 행하게 하였다. 적장인 등원랑(藤元郞)이 병졸을 이끌고

접근하자 진주판관 김시민(金時敏)과 곤양태수 이광악(李光岳)이 힘을 합쳐 성을

지켰고, 고성의 의병장인 최강, 이달이 밤에 망진령에 올라 햇불을 올리고 북을

울렸으며 공과 의령의 선비 심대승(沈大承)이 주의 북쪽 산에 올라 불을 밝히고

피리를 불며 망진령과 서로 호응하자 적은 불빛에 놀라 흔들렸다.

 

적장 등원랑(藤元郞)이 나타나자 군수물자를 버리고 거짓 패한 척 달아났고

병사들은 몰래 동문을 습격하였다. 이 때 김시민의 군대는 적병과 혈전을 벌이며

오는 대로 적을 죽여 버리니 적장은 약탈한 부녀자와 가축을 다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공은 응원군으로 합세하여 추격하며 적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

다음해에 적장인 평수길(平秀吉)30만 대군을 일으켜 바다를 건너 동래에서

진주로 쳐들어오니 형세가 풍우(風雨)와 같았다. 공은 단성에서 말을 달려가

구원해 주고 적병을 유인하여 적벽강 아래에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복병으로 하여금 길을 끊어버리게 하니, 적병은 나아가지도 물러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공은 큰 돌을 깨어 던져서 적병을 다 죽여 버렸다.

1594년 갑오에 적병이 강루(江樓)들에 이르러 수로를 끊어 버렸다.

공은 성 위에서 사졸들에게 노래를 부르고 북을 울리며 쌀을 말 등에 뿌리며

말을 씻는 흉내를 내게 하였다. 적병이 멀리서 바라보고서 산 위에

수원(水源)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호위를 풀고 떠나버렸다.

 

지금도 백마산에 최 위병장의 전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난이 끝난 후 3등 공신에 녹훈되어 선전관(3-6품관)

되었다.이보다 앞소 전공에 대해 논할 때에는 언제나 물러나 사양하니 사람들이

대수장군(大 樹將軍)”에 비견하였다.(진양지)

 

ㅇ 산휘(山輝 12)

자는 백옥(伯玉) 호는 낙남(洛南)으로 인재공 최현(崔晛)의 자이다.

인조 조에 정부를 전복하려는 광해군의 잔당인 류효립(柳孝立)의 음모를

탐지하고 고변서(告變書)를 작성하여 알림으로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여

그 공으로 영사공신 3등에 녹훈디고 완해군(完海君)에 봉하여졌다.

관은 청송부사에 제수되었다. 부임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군을 이끌고

출정중 강화소식을 듣고 비분 통곡하였다. 별세 후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문향금오. 구미의 역사와 인물

)

ㅇ 문세(文世 12)

충순위공 최윤재(崔潤才)의 증손이며 임진왜란 때의 원종공신으로

병조 참의에 중직되었다.(세헌록)